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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의 앵그리2030]⑤“男 100만원, 女 64만원?”…‘미투 없는 사회’ 출발은 고용 평등

중앙일보 2018.04.09 00:30
‘미투’(#MeToo)의 물결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캠퍼스, 문화계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숨었던 범죄자를 끌어냈고, 권력의 추악한 민낯을 밝혔습니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잠깐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궁극적으로 ‘미투 없는 사회’를 만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범죄는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특히 일터에서, 위계적 질서를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죠. 성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건 한국 특유의 직장 내 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선 ‘남성 상사, 여성 부하직원’이란 등식이 성립합니다. 
 
반대의 경우를 찾기 쉽지 않죠. 고위직은 둘째치고, 중간 관리자도 여성의 자리는 적습니다. 
 
남녀 임금 격차, 여성 임원 비율 OECD 최하위
 
여성의 사회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어서인 건 맞습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지금은 신입사원의 성비가 5대 5지만 1990년대엔 8대 2였다”며 “남성 임원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재 임원의 비율 역시 대략 8대 2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러나 500대 기업의 여성임원은 406명으로 전체의 2.7%(2016년)밖에 안 됩니다. 100명 중 3명도 안 되는 거죠. 심지어 3곳 중 2곳은 아예 여성 임원이 없습니다. 출발하는 숫자가 달랐다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자료:영국 이코노미스트

자료:영국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여성이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직장에서 일정 직급 이상 오르지 못하는 보이지 않은 장벽을 이르는 말입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직장 내 성 평등을 지수화한 겁니다. 한국은 조사대상 29개국 중 꼴찌입니다. 6년 연속이죠. 올해는 간신히 총점 20점을 넘겼습니다.  
 
1위인 스웨덴은 여성 고용률이 80%에 육박합니다. 남성 고용률과 3.7%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나죠. 한국은 20%포인트 이상입니다. 한국은 남성과의 임금 격차, 관리직 내 여성 비율,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 항목에서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관리직에 있는 여성의 비중이 10.5%에 불과한데 OECD 평균(31.8%)에 크게 못 미칩니다. 기업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은 더 참담합니다. 2.1%에 그쳤는데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43%)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이죠. 
 
직급 상승에 제약이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한국 고용시장에서 여성은 승진 가능성보다 훨씬 무섭고, 확실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첫 번째는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입니다. 최근 금융권엔 채용 비리 후폭풍이 거셉니다. 채용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금융감독원장이 옷을 벗었고, 일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죠. 
 
드러난 채용 비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입니다. 하나는 청탁을 받아 일부 지원자에게 특혜를 준 것, 또 하나는 남녀를 가려 뽑은 것입니다. 피해 범위를 고려하면 후자가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은영(31)씨는 3년 전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주씨는 소위 ‘스펙 좋은’ 취준생이었죠. 어지간하면 서류전형은 통과했다고 합니다. 그해 상·하반기 공채를 통틀어 총 9개 기업에서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습니다.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죠. 
 
주씨는 “한 기업에선 면접관 3명이 나에게 질문을 하나만 했고, 옆에 있는 남성 지원자와는 10분 넘게 토론을 했다”며 “내 실력이 부족해서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대놓고 남성을 원한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어겨도 처벌은 ‘벌금 500만원’
 
여성 취준생 중엔 주씨와 같은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기업이 남성 직원을 원하는 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이후죠. 
 
이젠 여성이 실력으로 남성에게 밀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반대가 더 흔하죠. 사법고시 등 여러 국가고시 합격자 비율도 남녀가 거의 비슷하거나 어떤 영역에선 여초현상이 관측됩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점수로만 뽑으면 합격자 중 70~80%가 여성일 것”이라며 “어느 정도 성비를 맞춰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부 기업은 보이지 않는 꼼수를 씁니다. 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면접을 통해 남성 합격자를 늘린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어기면 어떻게 될까요? ‘벌금 500만원’이 전부입니다.
 
두 번째는 임금 격차입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좋지 않은 거로 1등 하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자살률이 대표적이죠. 15년째 1등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있는데 바로 남녀의 임금 격차입니다. 
 
2016년 기준 여성의 시간당 평균 급여액은 1만2573만원으로 남성(1만9476만원)에 크게 못 미칩니다. 성별 임금 격차가 36%에 달하는데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64만원 밖에 못 받는다는 겁니다. OECD 평균인 14.1%와 비교하면 격차가 상당합니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여성은 2~3시간을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지요.  
 
남성은 제조업, 여성은 서비스업에 많은 이유는?
 
이 데이터는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비정규직 중에 여성이 많아서, 파트타임 근로자 중에 여성이 많아서 나온 숫자가 아니란 겁니다. 물론 같은 정규직이라도 학력이나 근속연수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걸 조정해 계산해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84.3% 수준입니다. 적게 받는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다는 얘기죠.  
 
임금은 근로자의 능력과 업무 성과에 대한 보상입니다. 어느 정도의 격차는 상식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격차가 과도하다면 차별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은주(29)씨는 지난해까지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정직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노골적인 성차별에 지쳐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같이 입사한 남성 직원이 월 40만원가량 더 받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남성들은 부점장 승격도 여성보다 1년 정도 빨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 번째, 여성이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잠깐 언급했듯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업종이나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2017년 기준으로 남성 취업자는 주로 제조업(20.4%), 도매 및 소매업(13.3%), 건설업(11.7%) 등에 종사합니다. 반면 여성은 도매 및 소매업(15.5%),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4.1%), 숙박 및 음식점업(12.4%) 순입니다.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남성이 여성의 2배고, 여성 취업자의 상당수는 임금이 낮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의미죠. 이런 업종은 보통 사업체 규모도 작습니다. 남성 임금근로자 중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비중은 14.3%지만 여성은 22.5%입니다. 
 
고용형태도 다릅니다. 남성 임금근로자 중 74%는 정규직입니다. 반면 여성은 59%만 정규직이고, 41%는 한시적으로 일하거나 시간제로 일합니다. 쉽게 말해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란 얘기죠.
 
직장에 남으면 승진 장벽, 떠나면 고용 장벽
 
이런 차이는 주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에서 비롯됩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된 2000년 여성 고용률은 50%였습니다.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56.9%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성 고용률을 연령별로 쪼개서 보면 한국은 뚜렷한 M자 커브를 나타냅니다. 20세 후반까지 오르다 30세 후반까지 떨어진 뒤 40세 이후부터 다시 상승하는 구조입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안 하다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다시 고용시장으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OECD 회원국은 이 시기 여성 고용률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문제는 일을 쉬게 되면 경력단절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경력이 끊기면 일을 하려고 해도 임금이나 고용형태가 이전보다 나쁜 서비스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성별·연령별 비정규직 비중을 보면 25~29세까진 남성과 여성이 유사한 흐름을 나타냅니다. 출발점은 비슷하다는 얘기죠. 그러나 30세 이후엔 상황이 달라집니다. 남성은 40대 중반까지 비정규직 비중이 10%대를 유지하지만, 여성은 30세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남성과의 격차 또한 벌어집니다.
 
출산과 육아를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분위기, 엄마 중심의 육아 문화 속에서 20~30대 한국 여성은 상당한 압박에 시달립니다. 어떻게든 경력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일과 가정 양쪽 모두에서 합격점을 받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둔 최하얀(34)씨는 “어린이집 등 하원 문제로만 남편과 한 달에 서너 번씩 다퉜다”며 “버텨보려 했지만 이러다 가족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회사에 남은 사람은 결국은 승진에서 밀리고, 일찌감치 그만둔 사람은 나중에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구조”라고 씁쓸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저출산·고령화로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을 고민한다면 성별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 조언입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두 나라를 콕 집어 얘기했습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죠. 실제로 앞서 인용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과 꼴찌를 다투는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연령별 여성 고용률이 뚜렷한 M자 커브를 나타내는 것도 닮았죠.
 
그런데 믿었던 동지마저 떠나가고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지난해 일본의 여성 고용률은 69.4%를 기록했습니다. 전년(66.1%)보다 3.3%포인트나 늘었습니다. 사상 최고치죠.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을 시작한 2012년부터 5년간 6%포인트가량 증가한 건데 이제 부러워했던 미국과 프랑스도 제쳤습니다. 한국은 전년 대비 0.7%포인트 증가한 56.9%에 머물렀습니다. 격차는 더 벌어졌고, 이제 동병상련을 논하긴 어렵게 됐습니다.  
 
<일본의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 
자료:니혼게이자이

자료:니혼게이자이

 

일본은 최근 5년 동안 50만 명 규모의 보육시설을 새로 지었습니다.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민간기업에 여성 채용 비율과 여성 관리직 비율을 높이기 위한 행동계획을 시행토록 하는 여성활약추진법도 제정했죠. 덕분에 출산율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한국과 닮았습니다. 대략 10~20년 앞서 겪으면서 한국이 가야 할 길 보여주죠. 일본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행할 의지죠.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 ‘경력 단절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건 이미 10년도 더 됐습니다. 이젠 낭비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네요.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건 여성이 약자여서가 아닙니다. 성별이 다르다고 대접도 달라지는 비정상을 바로 잡는 것뿐이죠. 여성에게 특혜를 주는 것도, 세상이 변해서 남자가 안 봐도 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에 깔린 진짜 차별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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