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찬호의 시시각각] ‘보수’ 칭호가 부끄러운 콩가루 제1야당

중앙일보 2018.04.06 01:16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문수를 서울시장에 전략 공천키로 한 것은 진심일까. 아니면 ‘정치 8단’ 박지원의 예언대로 ‘안철수와 묵시적 단일화를 위한 소모성 카드’로 김문수를 내세운 것에 불과할까. 한국당 의원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전자(진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절반의 진심’이다. 다시 말해 홍준표의 김문수 공천은 그가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내린 결단이 아니라 그의 완주를 전제로 ‘홍준표 본인 지키기’를 하기 위한 작전이란 얘기다. 왜 그런지 따져 보자.
 

홍준표는 ‘이적행위’ 불사하며 김문수 공천
비홍들은 선거 참패만 기원 … ‘이게 당이냐’

요즘 한국당 지지율, 특히 수도권 지지율을 볼 때 한국당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는 건 기적에 가깝다. 한국당이 서울시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홍준표로선 안철수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게 낫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되면 홍준표에겐 그야말로 악몽이다. 안철수는 삽시간에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는 야권의 대표주자로 뜨고 바른미래당도 한국당 대신 보수와 중도를 대표하는 구심점이 된다. 그 후폭풍으로 홍준표는 당 대표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 한국당이 미래당에 흡수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럴 바에야 ‘이적행위’란 욕을 먹더라도 보수 표를 갈라 먹어 안철수 당선을 막아 줄 인물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는 게 홍준표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그 점에서 김문수는 나쁘지 않은 카드다. 김문수는 2년 전 총선 때 대구에서 ‘진박’을 자처하며 공천에 매달렸다가 민주당 김부겸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태극기집회에서 박근혜 탄핵 반대를 외치며 극우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안철수가 김문수와 후보 단일화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여지는 제로에 가깝다. 김문수 본인이 서울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해서 대권주자로 회생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야권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대권주자급 정치인이 나오는 걸 원치 않는 홍준표에게 김문수는 그래서 좋은 카드다.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 지쳐 서울시장 선거에서 심판을 벼르는 보수·중도층에게 홍준표의 김문수 공천은 짜증 나는 소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권 견제라는 야당 본연의 임무보다는 나의 생존이 우선이란 게 ‘홍심(홍준표 생각)’인 듯하다. 요즘 한국당을 보면 가관이다. 다들 지방선거는 지면 오히려 좋고, 선거 이후 당권만 먹으면 된다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다. 비홍계는 홍준표를 끌어내리려는 일념 아래 지방선거에서 당이 참패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홍준표도 만만치 않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일단 대표직에서 물러나되 곧이어 열릴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해 당권을 되찾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게 당 안팎 전언이다.
 
황당하지만 홍준표니까 가능성이 없진 않은 얘기다. “보수 전체의 패배”라며 책임론을 일축하고 ‘대안 부재론’을 내세워 당권을 재탈환하는 시나리오다. 홍준표는 그동안 당협위원회마다 자기 사람을 꾸준히 심어 왔고, 지방선거 공천도 ‘사천’ 논란을 불사하며 요지마다 측근들을 꽂았다. ‘대표 연임’의 꿈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온 셈이다.
 
요즘 한국당은 홍준표 1인 천하다. 당명을 ‘준표당’으로 바꿔도 될 정도다. 최고위원회의와 중진 연석회의 같은 견제기구는 아예 열리지 않고, 서울시장과 경남도지사 공천 같은 중대사가 홍준표 손에서 척척 결정된다. 이런 기세라면 홍준표는 지방선거에서 아무리 참패해도 대표직을 지키면서 2020년 총선 공천을 쥐락펴락할지 모른다. 문재인 민주당 정부엔 최상의 시나리오다. 지지율이 20%를 밑돌고 그럴싸한 대선주자 하나 없는 불임(不妊) 제1야당과 공존하면서 독주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