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웹소설 비트코인

(30) 종착역

중앙일보 2018.04.06 01:01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신문을 보는데 우울은 계속되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화폐 열풍에 주가가 폭등한 기업의 주식 거래를 중지시켰다. SEC는 크립토 컴퍼니(Crypto Company)의 주식 거래를 며칠간 중단시켰다. 최근 주가 급등과 관련해 조작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SEC는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회사 주식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정확성과 타당성에 대해 우려한다”며 “특히 SEC에 보고된 회사 내부자의 보통주 매각 계획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이 ‘크립토’나 ‘블록체인’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기업들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며 “이는 1990년대 말 닷컴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여 산 바보가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더 큰 바보에게 비트코인을 넘겨준다는 ‘더 큰 바보이론’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시아 국가들의 암호화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 소식이 들렸고 가격이 폭락하여 투자가들이 망연자실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애써 태연 하려 했다. 요즘도 내 논문에 남긴 이메일로 누군가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낸다. 자동답장으로 쓴 이메일이 갈 뿐이다. 

 
“지금은 답장을 보낼 수 없다. 돌아보면 답을 하겠다. 사토시 나카모토.”

 
집 주변을 여기저기 배회하다 집에 들어선 나는 거실에 계신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는 오래된 영화를 좋아하신다. 비비안 리를 좋아하셔서 어머니의 질투를 받고는 하신다. 그날도 아버지는 비비안 리가 나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 저 영화 몇 번째 보시는 거예요. 한 10번은 보신 것 같아요.”

 
“저게 인생영화야. 네 할아버지와 함께 본 건데 그때는 의미를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인생을 닮았어. 물론 작가에게 사정하고 싶어. 주인공을 너무 비참하게 만든 것 아니냐고. 인생이란 어쩌면 양극단에서 중용의 덕으로 사는 것인지도 몰라.”

 
쇠락한 남부 명문가 출신의 블랑쉬는 실패한 결혼과 부모의 죽음, 집안의 몰락으로 상처를 입는다. 동생 스텔라를 찾아 뉴올리언스로 간다.

 
“뉴올리언스로 가는 열차 타봤니?"
 
아버지가 물으셨다. 
 
"그 전차의 이름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야. 나도 한번 어머니랑 다시 타고 싶구나.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후 극락이라는 열차를 또 갈아탔지. 그렇게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거야. 동생 부부를 만나러.”

 
동생 스텔라는 폴란드계 노동자 계급 출신의 스탠리 코왈스키와 결혼한 상태였다. 블랑쉬는 스탠리의 친구인 밋치와 사귀게 되고 둘의 관계는 결혼을 이야기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난 영화를 볼 때마다 남자들이 왜 저렇게 가엾은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누구나 슬픈 과거가 있는 것 아니겠니.”

 
“와우. 우리 아버지. 역시 페미니스트세요. 아버지. 그래도 어머니랑 백년해로하실 거죠.”

 
아버지는 웃으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가장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동생의 남편 스탠리는 블랑쉬가 고향에서 온갖 남자를 유혹하는 타락한 생활 끝에 쫓겨났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이를 친구 밋치에게 전하고 밋치와 블랑쉬는 헤어진다.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가고 부부의 아파트에 블랑쉬와 여동생의 남편 스탠리 단둘만이 남게 된다.

 
“저런 쳐 죽일 놈.”

 
아버지는 스탠리가 처형 블랑쉬를 강간하는 장면에서는 역정을 내신다. 블랑쉬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고, 스탠리와 스텔라는 그런 그녀를 외면한 채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고 만다.

 
“아버지 저 영화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인간이란 선한 면을 많이 발휘해야 해. 그런데 그러려면 수양을 많이 해야 하지. 저 영화에는 부와 가난, 거짓과 참, 사랑과 욕망과 배신이 고루 담겨 있어. 블랑쉬는 욕망이란 열차를 타고 묘지란 열차를 갈아타고 극락이란 기차에 이르지만, 그곳은 극락이 아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누구나 욕망이란 열차를 타지. 그러나 극락이란 열차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고행이 필요한 거야. 빌, 이제 내가 왜 저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겠니.”

 
“네. 저 영화를 젊은 세대가 많이 보게 하려면 스토리 전개가 엄청 빨라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집 바깥에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리고 두 통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그날 밤 레고를 사서 아버지와 기차놀이를 하였다.

 
“아버지 이 레고로 긴 기차를 만들어 봐요. 이 하나하나의 블록에 아버지의 가치를 모두 넣어 보세요. 어머니. 어머니도 여기 오셔서 그렇게 해봐요. 하나하나를 연결하면서 아버지를 추억하셔도 돼요. 그리고 두 분 사이의 사랑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 가족은 즐거운 마음으로 긴 기차를 만들었다. 아버지 이 기차의 이름을 지어보세요.

 
“음. 네가 네 어머니랑 백년해로 하라 했지. 신뢰로 가는 기차 어떠니.”

 
“네. 아버지. 블록체인은 그런 신뢰를 추구하는 기술이래요. 그 비트코인이 사라지더라도 블록체인은 남을 것이에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의를 해야 해. 사람들은 돈을 너무 쉽게 벌려고 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유혹에 빠져들지. 이 기차가 회로를 따라 잘 돌아가도 세상사가 그렇듯이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급속하게 튕겨 나갈 수 있어. 스스로 만든 행복이라는 회로를 항상 적당히 돌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그게 인생이란다.”

 
“네. 깊이 빠지면 옆에서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죠.”



그렇게 말하며 나로 인해 깊은 욕망에 빠진 세상에 속죄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우울함이 다시 나를 덮쳐 왔고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들었다. 위암 말기 환자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아픔을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 힘이 들었다. 적막감이 도는 길에서 성당을 향하는데 밤의 고요가 낯설기만 하다. 항상 익숙했던 것과 내가 단절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든다. 성당에 들어선 후 십자가에 성호를 긋고 무릎을 꿇었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평화를 주시고. 아름다움과 혜택과 축복을 주소서.”

 
나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믿었지만 세상은 다른 가치를 추구했다. 신뢰를 보기보다는 돈을 바라보았다. 가치가 있는 것에 투자하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그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이 발생한다. 때로는 만드는 사람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모른다. 한밤중이었는데 신부님이 우연히 들어오셨다.

 
“얼굴이 아주 아파 보여요.”

 
“네. 마음도 몹시 아픕니다.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수 있나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 자신이 없는데요.”

 
신부님은 성수를 머리에 뿌려주셨고 한참 동안 내게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신부님. 세상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원하는 대로 세상이 다 움직인다면 세상이 의미 없지 않을까요. 이 우주를 지배하는 누군가의 뜻이 있을 겁니다.”

 
“신부님, 저는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은데요. 삶이 굉장히 억울합니다.”

 
“더 많이 기도하시고 의지해 보세요. 주님의 말씀을요. 십자가를 진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한 분이십니다.”

 
“어쩌면 저는 돈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모두 안고 떠나고 싶습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는 내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비트코인에 여윳돈을 투입하면서 적당히 이득을 보며 관망하는 사람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마음을 졸이면서 금광을 찾는 기분으로 비트코인을 거래한다.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더라도 자기 손으로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이해한다. '금수저' '갓물주'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큰돈을 만져볼 기회에 쉽게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깔아 놓은 욕망이라는 선로에 기차는 브레이크 없이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었다. 묘비라는 열차를 지나 천국행으로 가는 것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인류의 도약을 믿고 싶다. 한 단계 굴곡을 지나 신뢰의 바다로 가는 열차를 꿈꾸고 싶었다. 병이 진행되면서 통증과 심리적인 불안이 점점 극대화되었다. 혼자서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신부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부정, 분노, 원망 등이 합쳐져서 나를 억눌렀다. 그냥 사라지면 비트코인의 창조자 자살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리라. 위암 환자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성당을 조용히 나와서 숲길을 걸었다. 가슴 속에 지녔던 총을 조용히 꺼냈다.

 
“기술로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해도 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혜안이다. 그 혜안이 욕망에 가려져 불나방처럼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을 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 많은 사람에게 죄를 짓고 저는 떠납니다.”

 
최고의 타짜는 실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 도박의 정점까지 갔다가 그걸 완전히 끊은 인물이다. 나는 성당이 조금 떨어진 숲길에서 내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며 생각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이제 영원히 잠들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신뢰의 바다로 항해하는 길을 가기를 염원했다. 세상이 알아줬으면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한 것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먼 미래에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진짜 돈과 내가 만든 비트코인 같은 것이 조화되어 나란히 보완적 경쟁을 하였으면 좋겠다. 신뢰라는 글자를 내 이름 앞에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