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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황제 대접’ 뒤에 숨은 중국의 세계전략

중앙일보 2018.04.04 09:25
번개와 파격이라는 말이 딱 맞다. 거의 ‘황제 대접’에 가깝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중국 방문 얘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문이었고 중국이 그렇게 파격적인 예우를 할 줄 몰랐다.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복잡한 방정식 풀기에 바쁘다. 김정은의 ‘번개 방중’을 보는 트럼프의 주산판, 북한의 향후 전술, 중국의 속셈, 일본과 러시아의 심산, 그리고 한국의 집념과 전략까지 어우러진 고차원 방정식이다.  
 

북핵 문제 차이나 패싱 막고 절대 권력 체면 세워
시진핑 절대 권력 첫 외교 시험대...'실용 외교' 계속될 듯

그러나 이 복잡한 바둑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가 있다. 예전과 다른 중국의 대외 행보다. 김정은의 방중을 번개처럼 성사시킨 걸 보면 이전 중국과 뭔가 다르다. 그런 변신이 북핵 이후 동북아 정세, 나아가 국제 질서에 어떤 충격을 가져올 지 살펴봐야 한다. 
시진핑 주석(우)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신화망]

시진핑 주석(우)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신화망]

지난 3월에 열린 전인대(全人大· 국회 격)는 중국 헌법을 개정해 국가 주석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앴다. 시진핑 주석에게 종신 집권의 길을 터준 거다. 덩샤오핑 이후 30년 넘게 유지돼온 집단지도체제가 1인 권력 체제로 회귀했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제 절대권력을 향해 일렬종대로 편성된 국가 지배 체제의 국가다. 절대 권력은 협상과 합리 그리고 소통보다는 일반성과 획일성 그리고 힘의 논리에 익숙하다.  
 
국가 자원을 일사불란하게 집중시켜 정책 수행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정책 결정과 시행 과정에서 오는 오류는 덮고 가기 쉽다. 절대 권력의 권위와 체면에 누가 되는 언행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류가 축적돼 폭발하면 혼란과 파국으로 치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시진핑 체제가 안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어느 쪽이든 국제 사회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 부부(좌)를 환송하는 시진핑 주석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위원장 부부(좌)를 환송하는 시진핑 주석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

절대 권력은 권위의 손상을 두려워한다. 김정은의 방중이 ‘번개’처럼 이뤄진 배경에는 북핵 문제 못지 않게 시진핑의 절대 권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근거다.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 대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발표는 자연스럽게 북핵 문제에 있어 ‘차이나 패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황제 권력을 막 완성한 시진핑 주석에겐 날벼락이자 ‘쪽팔림’이 아닐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 발표 직후 중국이 서둘러 김정은의 방중을 강행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번개팅’ 성사를 위해 중국은 북한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채찍과 당근을 동원했을 것이다. 북한은 향후 대미 비핵화 협상에서 활용 가치가 큰 ‘중국 지렛대’ 카드가 싫지는 않았을 터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 방중으로 중국은 북핵의 차이나 패싱을 막고 절대 권력의 체면을 살렸다. 그리고 북한은 향후 북핵 협상에서 미중 모순을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새 카드를 얻었다.  
김정은 전용 열차에서 김정은과 대화하는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우)[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전용 열차에서 김정은과 대화하는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우)[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 분명 달랐다. 잠시 시간을 2013년 5월로 돌려보자. 당시 김정은은 자신의 최 측근인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하지만 시진핑은 군인이었던 최용해에게 군복을 벗고 인민 대회당으로 오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시진핑은 최용해가 전달한 김정은의 친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옆에 있던 당시 양제츠 국무 위원에게 던지듯 넘겼다. 그리고 1시간도 못 되는 회견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해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시진핑의 불편한 심기는 그렇게 차가웠다.  
 
그러나 이번 김정은 방문에는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 왕치산 부주석 등 중국의 최고 지도부가 총출동해 파격적인 의전을 이어갔다. 거의 ‘시 황제’에 준하는 ‘황제 대접’을 했다. 시 주석은 김정은의 베이징 24시간 중 무려 8시간을 김과 함께 했는데 이는 중국 외교사에서도 보기 드문 파격 의전이다.
김정은 부부에게 차를 대접하는 시진핑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사]

김정은 부부에게 차를 대접하는 시진핑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사]

그럼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한 마디에 김정은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 북핵이 대화 국면으로 돌아선 건 환영이지만 북한의 저의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까진 갈 길이 멀다는 걸 모를 중국이 아니다.  
작금의 중국에게 더 중요한 건 북핵 문제가 갖 출범한 시진핑 절대 권력의 첫 외교 시험대라는 점이다. 만약 중국 주도로 북핵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간다면 시진핑 절대 권력은 더 강한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면 차이나 패싱이 현실화되면 시진핑 주석이 부르짖는 중화 부흥의 동력은 떨어지고 그의 국내 통치 기반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마뜩잖은 김정은에게 ‘황제 대접’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시진핑 절대 권력의 역설이다.
김정은 부부를 맞는 시진핑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사]

김정은 부부를 맞는 시진핑 부부 [사진 조선중앙통신사]

황제 권력과  권위를 수호하기 위한  중국의 파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때로는 완력이고 때로는 비상식이 그 파격의 이름으로 위장할 것이다. 물론 중국은 이를 국익을 위한 실용 외교라 부른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당장 한국에겐 사드 보복 문제가 그렇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으로 해결된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 그건 착시고 착각이다. 주중 한국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롯데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도, 한류 콘텐츠 방송 통제도, 중국 단체 관광객의 한국 방문 억제도 사드 보복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  
 
그 이유를 중국의 한 교수에게 물었더니 답이 이랬다. “사실 사드 보복 결정은 시진핑 주석이 했다. 따라서 보복 해제도 시 주석이 풀어야 한다. 한데 그의 권력이 워낙 강해지다 보니 아무도 그에게 이 문제를 꺼내지 않는다. 집단 지도 체제 시절에는 다양한 채널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면 협의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시 주석 목에 방울을 달려고 안 한다.”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 평창 동계 올림픽에 중국 관광객을 많이 보내겠다고 약속해도 지켜지지 않은 이유가 시진핑 절대권력에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절대 권력 폐해의 첫 번째 희생양이 한국이돼 버렸다. 이 같은 중국의 비 상식적 행보가 한국 외교에 ‘상수(常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사진 중금망]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사진 중금망]

북핵이 대화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한반도에 봄이 왔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만 국제 정세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중국 발 신 냉전도 가시권 내에 들어와 있다. 당장 미중 무역 전쟁이 걱정이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대해 500억 달러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30억 달러 대미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버티고 있다. 중국은 대화와 맞대응을 병행하고 있지만 미국이 강공을 할수록 밑질 게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국의 절대 권력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양보는 패배이고 국내 권력 기반 와해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중국해 영토 분쟁과 대만 문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등에서 그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중 스파이 독살 문제로 촉발된 영국과 러시아 대립이 서구와 러시아의 외교관 추방전으로 악화되고 있다. 동병상련의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해 서구와 맞서는 신냉전 시나리오가 곧 방송될 태세다. 중화부흥을 부르짖고 미국과 일전을 벼르는 시 주석이 이런 국제 형세를 마다할 리 없다.  
김정은 중국 방문을 보도한 인민일보 [사진 인민일보 캡처]

김정은 중국 방문을 보도한 인민일보 [사진 인민일보 캡처]

중국은 강해지는 군사력을 믿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3월 전인대 정부 업무 보고에서 올 국방예산을 작년보다 8.1% 늘어난 1조 1100억 위안(약 190조원)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1조 443억 위안)에 이어 2년 연속 1조 위안을 넘는 수치고 한국 국방 예산(43조원)의 4.4배, 한국·일본(52조5000억원)·인도(67조원)의 국방예산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 돈으로 첨단 무기를 집중 개발하다보니 군사 강국은 말이 아닌 현실이 됐다. 중국의 국방예산은 2011~2015년 5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증가하다 2016년 7.6%, 2017년에는 7%로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에서 '2050년 세계 일류군대'를 국가지표로 제시하자 올해부터 팽창 예산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힘의 외교를 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힘의 외교를 하고 있다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의 국방예산은 미국(6920억 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중국이 공개하는 국방예산에는 정부의 각종 지원금, 전략미사일 부대 및 핵 운용 부대 관련 자금, 우주 프로그램 예산, 지방전구(戰區) 운용 비용 등이 빠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숨은 예산'을 포함하면 중국의 실제 군사비는 공개된 수치보다 55% 더 많은 300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 국방 예산의 6배 이상이다.  
 
군사력이 커지면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완력 자랑 대상에서 한국은 빠지지 않는다. 이미 그 대상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군함은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서해에서 한·중 양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중간선을 100여 차례 넘어왔고 군사용으로 추정되는 부표까지 설치했다. 3월엔 중국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울릉도 서북방 55㎞ 지점(영해 경계 기준 33㎞)까지 날아와 정찰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군사 도발을 통해 한미 연합 전력의 대응 태세를 테스트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가 대화로 해결되는 기적(?)이 온다 해도 시진핑의 절대 권력이 가져올 ‘차이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차이나 리스크를 헤징하고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시진핑 절대 권력이 가져올 거친 행보에 태클을 걸 힘을 길러야 한다. 대중 외교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 검토가 필요하고 한미 동맹은 물론 주변국과 협력을 강화해 대중 외교 카드도 늘려야 한다. 물론 다양한 채널에서 중국과의 소통 강화는 필수다. 한국은 지금 북핵 대화 훈풍에 가슴 설레고 있을 때가 아니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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