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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재량’ 강조한 김기식에게 ‘칼자루’ 더 주겠다는 금융위

중앙일보 2018.04.04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주정완 경제부 기자

주정완 경제부 기자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재량’이었다. 그는 지난 2일 금감원 전 직원 앞에서 “금융감독기구는 법령에 근거하면서도 그 특성상 재량 범위가 넓다”고 말했다.
 

7월부터 대기업 금융사 규제 권한
금융감독원, 금융위서 넘겨 받아
계열 분리 권고 등 제재 강도 세져
업계 의견 충분히 듣고 정책 펴야

표준국어대사전은 재량의 뜻을 “자기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함”이라고 풀이한다. 김 원장의 말을 쉽게 풀면 관련 법령에 애매한 구석이 많아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규제의 칼자루’를 쥔 금감원장의 재량은 금융회사에는 ‘공포’가 될 수 있다.
 
금감원장이 현재 가진 재량도 강력한데 오는 7월 더 센 ‘칼자루’를 쥐게 된다. 보험·증권·신용카드 등 제2금융권 대기업의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책의 일환이다. 대선 직후였던 지난해 6월 국회에서 김기식 당시 더미래연구소장의 사회로 열린 ‘재벌개혁 토론회’에서 나온 제안과 일맥상통한다.
 
통합감독은 그룹별로 금융 계열사 전체를 한 묶음으로 해서 자본 적정성과 위험 관리를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개선 조치를 하는 것이다. 생명보험 ‘빅3’로 불리는 삼성·한화·교보생명과 미래에셋(증권·보험), 현대차(카드·증권), DB(보험), 롯데(카드·보험) 등 7곳이 해당한다. 이들 7개 그룹의 금융 계열사는 100곳에 가깝다.
 
금융위원회가 3일 공개한 통합감독 모범규준 초안에는 ‘권한의 위탁(제23조)’이란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금융위는 대기업 금융사와 관련한 규제 권한을 금감원에 대폭 넘겨준다. 금감원은 감독 대상 금융그룹을 지정하는 것부터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제출받고 위험을 평가하는 것까지 전반적인 권한을 갖는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그룹혁신단장은 “정책(금융위)과 감독(금감원)의 역할을 구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이번에는 김 원장의 취임과 맞물려 예사롭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범규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의 수준도 높다. 만일 금감원이 요구한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거나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해당 임직원의 징계를 권고할 수 있다. 상황이 심각할 경우 금융 당국이 해당 금융회사에 경영개선 계획을 내도록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사실상 계열 분리를 권고할 수 있다. 예컨대 보험·증권·카드의 3가지 업종을 하고 있다면 보험만 남기고 증권·카드는 포기하라는 것이다. 칼자루를 쥔 당국의 ‘권고’는 금융사 입장에선 ‘날벼락’이다.
 
문제는 모범규준 자체가 법령에 명확한 근거가 없이 금융 당국의 ‘재량’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먼저 규제부터 시행하고, 법은 나중에 만들자는 것이다. 금융위는 올해 안에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하반기께 시행된다.
 
이 단장은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금융사들이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갖기 위해 일종의 ‘모의고사’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모범규준은 상법 등 다른 법령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이 그룹별 대표 금융회사를 지정하면 이 회사의 이사회가 전체 금융 계열사의 위험 관리 체계를 총괄한다. 상법상 각각의 회사에서 별도로 구성한 이사회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금융위는 앞으로 3개월간 각계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업계의 반대가 있다면 ‘재량’으로 강행하지 말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정완 경제부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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