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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0여 곳 가보니…'대낮 인질극'에도 텅 빈 정문

중앙일보 2018.04.03 19:50
3일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있는 학교보안관실이 비어 있다. 권유진 기자

3일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있는 학교보안관실이 비어 있다. 권유진 기자

 
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 출입을 통제하는 학교보안관은 자리에 없었다. 정문을 지나 본관에 들어가니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십여 분 정도 학교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오자 정문 근처에 학교보안관이 보였다. “졸업증명서를 받으려고 왔는데 정문에 아무도 없어 일단 들어왔다”고 하자 그는 “화장실에 다녀왔다”며 당황해했다.  
 
3일 오전 중앙일보 취재진이 찾은 서울의 초등학교 10곳 중 대부분은 외부인의 출입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몇몇 학교들은 전날 방배초교에서 벌어진 ‘대낮 인질극’ 때문에 출입 절차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지만, 규정대로 신분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학교는 거의 없었다.  
 
5곳은 학교보안관이 자리에 없어서 누구나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머지 5곳 중 2곳은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면 출입을 허가했고, 3곳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교육부의 가이드라인대로 신분증을 제출받은 뒤에야 일일 방문증을 발급해 준 건 단 1곳이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가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발급해 준 일일 방문증. 정진호 기자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가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발급해 준 일일 방문증. 정진호 기자

 
“신분증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학교보안관 김모씨는 “원래 신분증을 받아야 하지만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다. ‘학교에서 신분증이 없다며 못 들어가게 한다’고 교육청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학교에서도 신분증을 제출받지 말고 그냥 들여보내라고 한다. 3년 전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서류를 받으러 왔다고 들어와서는 난동을 부려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학교보안관 여모(72)씨는 “아이가 놓고 간 준비물을 주려고 오는 학부모가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된다. 신분증이 없으니 그냥 들어가겠다는 사람들과 싸우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보안관이 경찰도 아니고 외부인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권한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들은 불안해했다. 이날 낮 12시 반쯤 초등학생 딸을 데리러 온 장수정(35·여)씨는 “어제 방배초교의 인질극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학교는 외부인이 출입하기 쉬운 곳이라, 예산이 더 들더라도 보안관 숫자를 확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일 오후 서울 방배초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 정용환 기자

3일 오후 서울 방배초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 정용환 기자

 
“인질극에 대해 학교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전날 인질극이 벌어진 방배초교에는 자녀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방문이 종일 이어졌다. 이 중 일부는 정문 앞에서 “몇 학년 몇 반 누구 부모인지 밝혀야 들어갈 수 있다”며 방문자들의 신상을 일일이 기록하기도 했다. 방배초교와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상담 및 치료 지원 대책을 마련해 조만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학부모는 인질극 당시 학교 측의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초등생 딸을 둔 김모씨는 “인질극이 끝날 때까지 학교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아이가 집에 와서 얘기한 후에야 인질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고 몇 번을 당부하던데, 우리는 자녀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이에게 우유를 따라주라고 권한 뒤 제압” 
한편 전날 방배초교 교무실에서 인질범 양모(25)씨와 한 시간 가까이 대화하다 검거한 정근하(56) 서울 이수파출소 팀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에게 우유 한 잔을 주라고 권하자 양씨가 잠깐 칼을 놓길래 그 틈에 그를 제압하고 검거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사건 당시 양씨에게 “식사 시간이니까 아이에게 주자”며 빵과 우유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후 우유를 종이컵에 따라 양씨에게 줬고, “아이에게도 우유 한 잔을 줘라”고 권했다. 이후 양씨가 우유를 집으려고 칼을 책상 위에 놓는 순간 칼을 멀리 쳐내고 양씨의 목을 젖힌 뒤 검거했다. 정 팀장은 “위급한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내 가족이다’라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말했다. 
 
경찰은 이날 양씨에 대해 인질강요와 특수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송우영·정용환·권유진·김정연·정진호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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