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흥녕선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출토지가 명확한 첫 사례다.[사진 문화재청]](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03/f8ade358-7be2-4f76-9bc3-929c50901496.jpg)
강원도 영월 흥녕선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출토지가 명확한 첫 사례다.[사진 문화재청]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절터에서 금동반가사유상이 나왔다.
영월군과 강원문화재연구소(소장 오제환)는 지난해 11월부터 착수해 발굴조사 중인 영월 흥녕선원지(강원도 기념물 제6호) 터에서 높이 15㎝, 폭 5㎝ 크기의 금동반가사유상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국내에는 반가사유상 40여점 있지만 이번처럼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으로, 출토지가 명확한 첫 사례로 주목된다. 기존 반가사유상은 예전부터 대부분 사찰에서 보관해온 것들로 정확한 출처를 알기 어려웠다.
금동반가사유상은 청동 표면에 도금한 반가사유상을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상으로,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출현했으나 고대에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유행했다.
삼국시대 불상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1920년대 경북 경주에서 발견됐다고 전하나 출토지가 알려지지 않았고,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역시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다.
![영월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03/738522b8-9e04-43d4-ad64-0bb83ab03106.jpg)
영월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곽동석 동양대 교수는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하과 유사하다"며 "양식상 7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조형적으로도 매우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곽 교수는 "반가사유상의 자세는 조형적으로 비례가 잘 맞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반가사유상은 조형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어 "영월 지역이 삼국시대에 불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금동반가사유상 출토로 역사적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곳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흥녕선원은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자산문파의 본거지다. 통일 신라시대의 승려인 징효대사(826~900)가 크게 번성시켰다고 전해진다. 징효대사 탑비(보물 제 612호)와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탑) 등은 현재 법흥사 경내에 남아 있다. 흥녕선원지에서는 앞서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두 차례 시굴조사가 이뤄져 건물지와 석축 등 다양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와 유적이 나왔다.
![영월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의 후면. 조형적인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 문화재청]](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03/9e90d864-b06f-4959-9d65-96601ede8534.jpg)
영월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의 후면. 조형적인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 문화재청]
한편 조사단은 "유물 상태는 좋은 편"이라며 "보존처리와 추가 연구를 통해 유물 주조기법과 도금방법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사실상 방치된 흥녕선원지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흥녕선원지에서는 앞서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두 차례 시굴조사가 이뤄져 건물지와 석축 등 다양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와 유적이 나온 바 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