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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와 사과하고 천안함 건드리고 … 김영철의 교란작전

중앙일보 2018.04.03 02:26 종합 3면 지면보기
김영철

김영철

“남측에서 저보고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
 

김 “취재 제약, 기자들 섭섭했을 것”
북한 고위인사 직접 사과는 이례적
“남측 천안함 갈등 확대 노렸을 수도
폭침 주범이라 시인한 건 아닐 듯”

북한 김영철(사진) 노동당 부위원장이 2일 오전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취재단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던진 이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 KBS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낸 뒤 ‘천안함 괴담’ 논란이 다시 불을 지핀 시점이어서 발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김영철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북한 정찰총국의 총국장을 맡고 있었다. 정찰총국은 한국과 해외를 대상으로 정보수집, 파괴공작, 요인암살 등 공작 활동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지목된 배경이다.
 
그런 김영철이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오자 천안함 유족과 야당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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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영철의 발언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김영철은 한국에서 천안함 폭침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의 발언은 자신에 대한 한국의 평가를 인용하는 형식이며 스스로 자기 소행을 시인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발언은 김영철이 예고 없이 남측 취재단 숙소를 찾아와 간담회를 열고 양해를 부탁한다며 꺼낸 말이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은 ‘남조선의 모략극’이란 주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언론을 처음 상대하는 김영철이 대뜸 입을 열자마자 천안함 얘기를 꺼낸 건 철저히 준비한 멘트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영기(전 고려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은 “김영철은 자신이 천안함 주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반어법을 구사했다”며 “천안함 논란으로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의 이성우(고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 회장은 “무슨 맥락으로 얘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농담이라면 유족들에게 큰 상처를 안기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김영철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진정한 남북 화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이 기자단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배경도 눈길을 끈다.
 
김영철은 1일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 대한 취재가 제한됐다는 한국 취재진의 불만을 들은 뒤 “취재활동을 제약하고 자유로운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취재활동에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왔다”고 덧붙였다. 김영철은 그러면서 “참으로 섭섭했을 것” “십분 이해한다” 등의 표현을 썼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잘하겠다”는 재발 방지도 여러 번 약속했다.
 
평양의 봄 풍경을 취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남측 취재진의 요청에 김영철과 동석한 북측 당국자는 “기자분들의 마음을 개운하게 풀어주는 견지에서 일정을 조정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영철과 같은 고위급 인사가 직접 한국 취재진에게 사과한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에선 사과는 자아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좀처럼 보기 어렵다”며 “북한이 일단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강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철재 기자, 평양공연공동취재단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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