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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환율 주권

중앙일보 2018.04.02 01:3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그는 그 후 밀어닥칠 ‘잃어버린 20년’은 상상도 못했으리라. 1985년 9월 22일 뉴욕 맨해튼 플라자호텔의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대장상. 그의 표정은 밝았다. 미·영·독·프 등 다른 G5 재무장관과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20분 만에 두 줄짜리 성명에 서명했다. ‘미 달러화 가치를 내릴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고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통화 정책을 공조한다’.
 
그러나 일본의 여유는 잠깐이었다. 당초 15~20% 정도로 예상했던 엔화 절상 폭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회담 직후 24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87년 말엔 120엔대까지 올라버렸다. 엔고가 되면서 부동산과 주식이 급등하고 내수가 팽창하는 등 거품경제가 봄날 벚꽃처럼 피었다. 하지만 90년대로 접어들며 거품은 꺼지고, 긴 침체의 터널이 시작됐다.
 
플라자합의는 80년대 쌍둥이(무역과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경제 문제를 국제 정치로 푼 결과다.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올린 금리 때문에 달러 강세와 무역 적자가 계속되자 최대 무역 흑자국 일본을 타깃으로 삼았다. 협박의 지렛대는 ‘안보 공조’였다. 막상 당하는 일본은 세계 최강 미국이 자기들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덩치 커진 경제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에서는 “미국에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복수를 했다”는 정서까지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환율 문제 등을 놓고 나오는 미국의 모양새가 33년 전 플라자 합의 때를 똑 닮았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미국의 새 무역 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에 ‘환율 합의’를 집어넣은 대목이 찜찜하다. 기획재정부는 환율 이면합의설을 부인하면서도 ‘외환시장 미세 조정’의 내용을 공개하는 협의는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한 양보라고는 하나, 아무래도 환율 정책이 위축되기 쉽다. FTA는 개별 물품의 문제지만, 환율은 수출 전체와 직결되는 문제다.
 
우리 정부는 “FTA와 환율 문제는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인 미국은 이미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는 ‘점잖은’ 자세를 버렸다. 트럼프는 사업가 대통령 아니랄까 봐 FTA 개정을 북핵 회담과 연계할 뜻까지 비쳤다. 이 와중에 우리는 통상은 통상교섭본부에서, 환율은 기재부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부처 간 벽 쌓기에 급급하다. 미국은 대통령까지 같이 뛰는 현대식 ‘토털 축구’를 펼치는데, 우리는 아직도 각자 포지션에만 매달리는 ‘동네 축구’를 하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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