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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못난 후손 꾸짖어 주소서”…진척없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중앙일보 2018.04.02 00:00 종합 21면 지면보기
“죄송천만입니다. 108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후손들을 꾸짖어 주시옵소서, 크게 꾸짖어 주시옵소서”
 

지난달 中 다롄서 안 의사 추모식

추념사를 읽어 나가던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전 통일원 장관)의 목이 끝내 잠겼다. 지난달 26일 중국 다롄(大連)시의 뤼순(旅順)감옥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추도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이날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살한 안 의사가 일제 통치 지역인 뤼순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한 지 108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전 장관은 “해마다 안 의사 영정에 같은 말씀을 고하는 게 너무나 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훈처의 유해발굴추진단 자문위원장이기도 하다.  
뤼순 감옥에 수감중일 때의 안중근 의사 [중앙포토]

뤼순 감옥에 수감중일 때의 안중근 의사 [중앙포토]

순국 108년 지나도록 유해 행방 못 찾아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두 동생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고 말했다. 조국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사후에도 지키겠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언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의 묘가 한국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유족에게 유해 인도를 하지 않고 감옥 담장 바깥의 묘지에 묻었기 때문이다. 사형집행 보고서에는 “감옥 묘지에 묻었다”고만 적혀 있을 뿐 구체적인 매장 위치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  
 
이날 추도식이 끝난 뒤 임성현 국가보훈처 보훈예우국장과 함께 그동안 매장 장소로 거론돼 온 후보지 세 곳을 답사했다. 그 중 뤼순 감옥 바로 뒤편의 위안바오산(元寶山)은 정부와 전문가들이 큰 기대를 걸었던 곳이다. 
순국 당시 뤼순감옥 전옥(형무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꼬(今井房子)가 제공한 사진과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 구리하라 사다기치(栗原貞吉)는 안 의사 사형집행 뒤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고 이마이는 집 안에 사당을 만들어 놓고 평생 안 의사를 숭모했다. 
그가 제공한 사진은 1911년 감옥묘지에서 위령제를 지낸 직원들이 단체 촬영한 것으로 배경에는 안 의사의 묘지 위치가 화살표로 표시돼 있었다. 
이마이 후사꼬가 제공한 1911년 뤼순감옥 뒤산에서 촬영한 사진.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에 화살표를 표시해 두었다. [국제한국연구원]

이마이 후사꼬가 제공한 1911년 뤼순감옥 뒤산에서 촬영한 사진.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에 화살표를 표시해 두었다. [국제한국연구원]

이를 제공받은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수차례의 답사와 측량을 통해 사진에 나타난 지형과 똑같은 곳을 특정했고 이를 토대로 2008년 3∼4월 한·중 공동 발굴이 이뤄지게 된다. 
사형 보고서에도 매장 위치 기록 없어
2008년 발굴 모습 [중앙포토]

2008년 발굴 모습 [중앙포토]

안중근 의사 매장지로 추정돼 2008년 발굴을 했던 위안바오산 능선은 현재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뤼순=예영준 특파원]

안중근 의사 매장지로 추정돼 2008년 발굴을 했던 위안바오산 능선은 현재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뤼순=예영준 특파원]

하지만 찻잔 조각 등이 나왔을 뿐 기대했던 사람의 뼈는 나오지 않았다. 
또 아파트 부지 조성 공사로 땅이 파헤쳐져 당초 목표로 삼았던 지역의 40%가량은 발굴을 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완성돼 추가 발굴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 이후 인근 야산에 고려인 묘지가 있었다는 현지인의 증언에 따라 중국 측이 단독으로 발굴에 나섰으나 역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근거가 부정확했던 셈이다.  
고려인묘지가 있었다는 증언에 따라 2008년 10월 중국이 단독 발굴했던 지역. 현재 흙무덤으로 변해 있다.[뤼순=예영준 특파원]

고려인묘지가 있었다는 증언에 따라 2008년 10월 중국이 단독 발굴했던 지역. 현재 흙무덤으로 변해 있다.[뤼순=예영준 특파원]

단 하나 남은 추정지는 둥산포(東山坡)의 공동묘지다. 뤼순감옥 정문에서 2㎞ 동쪽의 언덕에 뤼순감옥 복역 중 숨지거나 사형수를 묻던 곳이다. 이곳은 1986년 북한 발굴단이 다녀간 적이 있다. 
 
당시 발굴단장은 안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이었다. 북한 발굴단은 이 묘지가 당시 고구마밭으로 개간된 상태인 데다, 사형수들을 매장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뼈를 다른 곳에 버렸다는 감옥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는 발굴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현재 안 의사 유해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간단체와 전문가들은 “사형집행 보고서에 나오는 감옥 묘지로 동산포 이외의 장소를 생각하기 어렵다”며 발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안 의사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뤼순감옥 동쪽의 동산포 감옥묘지 터. 시민단체는 이 곳의 발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뤼순=예영준 특파원]

뤼순감옥 동쪽의 동산포 감옥묘지 터. 시민단체는 이 곳의 발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뤼순=예영준 특파원]

하지만 이런 바람만으로는 중국 당국의 발굴 승인을 받아낼 수 없다. 한국은 고위급 인사 회담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에 발굴 협력을 요청해 왔다. 
중국은 ^남북 합의에 의한 발굴지 특정 ^구체적 근거 자료 제시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발굴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2008년 위안바오산 발굴 허가는 이 두 조건을 충족한 결과였다. 남북 합의는 안 의사가 황해도 해주 출신인 데다 중국이 외교적 고려에 따라 남북 어느 한쪽의 연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순국 110년까지 유해 찾기 최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근거 자료 확보다. 추정이나 구술 증언만으로는 자국 영토를 파헤칠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자료 수집에 나서고 외교 경로를 통한 협조 요청도 했지만 10여 년째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땅을 파헤치지 않고 지표면 아래를 조사할 수 있는 기술인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땅속에 매설된 군 통신 선로 등의 정보가 이 과정에서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2년여 동안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제 배치에 따른 갈등으로 발굴 협력 요청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냉랭한 상태였다.  
 
현지를 둘러본 임 국장은 “3·1 운동 100주년이자 안 의사 의거 110주년이 되는 내년, 그리고 순국 110주년이 되는 내후년까지 반드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함께 답사한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는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매장지를 특정할 수 있는 증거 자료의 발견에 정부뿐 아니라 한·중·일 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헛무덤)의 비석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송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 조성된 것입니다.” 
언젠가 돌아올 님을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7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서 있다.   
뤼순=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서울 효창공원의 안중근 의사 가묘. 안 의사의 유해가 송환되면 모실 곳이라고 씌어져 있다.[중앙포토]

서울 효창공원의 안중근 의사 가묘. 안 의사의 유해가 송환되면 모실 곳이라고 씌어져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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