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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주교가 전하는 안동 '엄마 까투리' 이야기

중앙일보 2018.03.31 15: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9)
대구 범물성당에서 강연하는 두봉 주교. [사진 송의호]

대구 범물성당에서 강연하는 두봉 주교. [사진 송의호]

 
천주교 초대 안동 교구장을 지낸 두봉 레나도(89) 주교가 3월 18일 대구 범물 성당에서 강연했다. 은퇴한 뒤 경북 의성군 봉양에서 지내는 그는 손수 운전해 대구에 도착했다. 모처럼의 강연 나들이다.
 
두봉 주교는 이날 강연장을 찾은 주민을 향해 “동화 『엄마 까투리』를 아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리고는 2007년 세상을 떠난 안동 출신 동화 작가 권정생의 작품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다소 서툰 우리말로 큰 제스처를 써가며 『엄마 까투리』 이야기를 펼쳤다.
 
 
강연을 마친 뒤 주민들과 인사하는 두봉 주교. [사진 송의호]

강연을 마친 뒤 주민들과 인사하는 두봉 주교. [사진 송의호]

 
"봄이 한창인 산에 산불이 났습니다. 엄마 까투리한테는 갓 태어난 꿩병아리 아홉 마리가 있었습니다. 엄마 까투리는 "깍깍" 새끼들을 부르며 불길을 피해 쫓겨 다녔지만, 불길은 점점 세차게 가까워졌습니다. 갑자기 불길이 엄마 까투리를 덮치자 저도 모르게 그만 푸드덕 날아올랐습니다.
 
저만치 날아가다가 엄마 까투리는 그만두고 온 새끼들이 생각났습니다. 엄마 까투리가 돌아오자 엄마를 찾고 있던 꿩병아리 아홉 마리는 재빨리 엄마한테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불길이 엄마 까투리를 덮치자 또 푸드덕 날아올랐다가는 다시 내려오고 몇 번이나 그랬지만 아무래도 새끼들을 두고는 혼자 달아나지 못했습니다.
 
 

동화 『엄마 까투리』의 애니메이션. [안동시 제공]

 
엄마 까투리는 새끼들을 모아 놓고 한군데 앉아 얼른 엄마 날개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두 날개 안에 새끼들을 꼭 보듬어 안았습니다. 불길이 기어코 엄마 몸에 붙었지만 꼼짝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산불은 하루 만에 가까스로 꺼졌습니다.
 
타 죽은 엄마 품속에서 새끼들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 꿩병아리들은 깃털이 돋아나고 날개도 커다랗게 자랐습니다. 반대로 숯덩어리가 된 엄마 까투리는 비에 젖고 바람에 쓸려 앙상한 뼈대만 까맣게 남더니 그것마저 부서져 버렸습니다. 꿩병아리들은 밤이면 앙상한 엄마 까투리 곁으로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까투리는 온몸이 바스러져 주저앉을 때까지 새끼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엄마 까투리의 죽음이 곧 예수의 부활'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 세워진 동화 『엄마 까투리』의 조형물. ‘엄마 까투리’는 안동시의 새로운 지역 상징물이 됐다. [안동시 제공]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 세워진 동화 『엄마 까투리』의 조형물. ‘엄마 까투리’는 안동시의 새로운 지역 상징물이 됐다. [안동시 제공]

 
두봉 주교는 마지막에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병아리”라며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닌 주어진 선물”이라고 했다. 또 “엄마 까투리의 죽음이 곧 예수의 부활과 같다”며 이웃을 돌아보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두봉은 1969년 안동 교구장이 된 이후 가난한 농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1978년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 때는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두봉 주교는 1990년 교구장 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뒤 행여 후임 교구장에게 부담이 될까 봐 안동을 떠나 경기도 고양의 가건물 공소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안동 교구장 권혁주 주교가 고향으로 돌아와 달라고 제의하자 2004년 의성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화 『엄마 까투리』를 쓴 고 권정생 작가. [안동시 제공]

동화 『엄마 까투리』를 쓴 고 권정생 작가. [안동시 제공]

 
그는 안동의 유교적 전통도 존중할 줄 알았다. 두봉 주교는 안동 사람들이 고 권정생 작가와 함께 가장 존경하는 현대 인물이다. 두봉이 권정생보다 8살 많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난 두봉 주교는 1954년 가톨릭 신부로 한국에 들어왔으며, 1982년 프랑스 정부에서 나폴레옹 훈장을 받기도 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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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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