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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한복판서 "공산당 없어진다" 기염 토한 악동

중앙일보 2018.03.31 07:10
어떻게 보면 안하무인격으로 걸리는 족족 욕설이나 다름 없는 말로 상대를 몰아붙여 기어이 적을 만드는 '악동'이었다. 또 어떻게 보면 소오강호처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마음껏 비웃어 주겠다는 듯 겁없이 할 말을 하는 비정한 논객이었다. 2005년 가을 베이징은 한 사람의 언행이 요동칠 때마다 들썩거렸다.
  

대만 대표 논객 리아오 선생 타계
거침 없는 '모두까기' 로 역사비평

2005년 중국 강연 여행서 연쇄 독설
통일전선 효과 노렸던 中당국 쩔쩔매

당시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공산당 비판을 쏟아내는 리아오(李敖) 선생의 '활극'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현상을 현장감 있게 지켜볼 수 있었다. 중국 학생들은 리아오 얘기 들어봤냐는 말로 화제를 삼곤 했다. 가끔 수위 조절을 하긴 했지만 언제 뭐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들었다는 청취 소감을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북 콘서트에서 청중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리아오 선생 [사진=구글 캡처]

북 콘서트에서 청중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리아오 선생 [사진=구글 캡처]

 
중국공산당의 심장부인 베이징 한복판에서 그렇게 거침 없는 언사를 언제쯤 다시 들을 수 있을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연실색한 일이었다. 리아오 선생은 백색테러가 횡행하던 1970년대 겁도 없이 당시 대만의 총통 장제스와 그의 아들 장징궈를 펜과 입으로 두들겼다. 대문호 루쉰도 그의 안중에 없었다. 꼬투리만 잡히면 상대의 위상이나 지명도에 아랑곳 않고 물고 늘어졌던 '싸움꾼'이었다.
  
대만의 반체제 문인이자 논객·역사학자 리아오 선생이 지난 18일 타계했다. 2015년부터 뇌종양을 앓아온 리아오는 대만 타이베이(台北)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3년 전 80세부터 뇌종양을 앓으며 기력이 많이 쇠했지만 13년 전 그가 70세였던 2005년 가을엔 형형한 눈빛과 쇳소리 나는 고성으로 중국 대륙을 호령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자신감이 커진 중국은 그해 롄잔(連戰) 국민당 전 주석과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주석 등 대만의 권위 있는 정객들을 초청했다. 평화공세였다. 대미는 리아오 선생으로 장식하려 했던 공산당은 그를 베이징·상하이·홍콩을 도는 12일간의 ‘선저우(神州·중국을 뜻하는 옛말)’ 문화투어에 초대했다. 
 
리아오 선생처럼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모든 대만인에게는 이처럼 관대하다는 당의 방침을 한껏 알려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당시 봉황위성TV의 인기 교양 프로그램 '리아오-할 말 있습니다'의 진행자로 대륙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인사였기에 중국 당국에선 중국의 통일전선에 대한 선전효과를 단단히 기대했을 게다.  
  
그해 9월21일 베이징대 강연. 행사의 기획자들이 거품을 물만한 대형 '폭탄'이 터졌다. 공산당 소멸론을 천명하며 기염을 토한 것이다. 당시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공산당은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역사에서 나온 모든 것은 역사 속으로 소멸한다. 공산당도 언제가는 소멸할 것이다. 우리는 공산당을 끌어안아 유연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한마디 잊지 않았다.  

“탄압을 초래하는 미욱한 방법으로 정부에 맞서지 말고 현명하게 머리를 좀 써라.”

 
이런 말들이 터지기 시작하자 현장의 당국자은 연설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대륙에선 보도지침에 따라 연설 내용 없이 사진만 보도됐지만 대만에선 TV로 생중계됐다.  
  
선생의 거침 없는 언사는 가보고 싶은 장소를 얘기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만리장성에 오르기보다는 친청(秦城)감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범 수용소를 언급한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2005년 9월21일 베이징대학 강연에서 외설적인 사진을 꺼내는 등 돌출 행동으로 눈길을 모으고 있는 리아오 선생. 옆자리에 앉은 베이징대 총장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시나닷컴]

2005년 9월21일 베이징대학 강연에서 외설적인 사진을 꺼내는 등 돌출 행동으로 눈길을 모으고 있는 리아오 선생. 옆자리에 앉은 베이징대 총장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시나닷컴]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의 현실을 에둘러 야유하기도 했다. 리아오는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마치 야동을 보게 하는 효과와 같다”고 말했다. 언론 자유를 허하는 것이 겁먹을 일이 아니라는 뜻인지 못 보게 하면 할수록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듯 언론 자유도 그런 속성이 있다는 뜻인지 아무튼 기습을 당한 당국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대만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1971년 3월 장제스 총통과 집권당인 국민당을 비판했다가 정치범으로 5년8개월간 수감된 뒤 1976년 풀려났다. 청조 말기 사회상을 다룬 소설 '북경법원사'(北京法源寺) 등 10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2000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 대만 총통 선거에 출마했고,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 격)을 지냈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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