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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나간 안봉근 "우리는 특활비 심부름이나 했지…"

중앙일보 2018.03.30 18:02
30일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30일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저희는 대통령님 지시사항 이행하고 심부름이나 충실히 했지, 저희들이 뭘 개입하고 건의를 하고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청와대 특활비 상납 문제에 대해 자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30일 오후 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성창호) 심리로 열린 세 전 국정원장(남재준·이병기·이병호)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다.
 
검찰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필 의견서 등을 통해 안 전 비서관이 먼저 "국정원 특활비를 받으시라"며 건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전 비서관이 "이전부터 청와대에서 국정원 돈을 받아왔다. 관행으로 받는 돈이니 문제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이병기,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 [뉴스1]

왼쪽부터 이병기, 남재준, 이병호 전 국정원장. [뉴스1]

 
검찰은 이날 법정에 나온 안 전 비서관에게 이런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안 전 비서관은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검찰이 "본인이 아니라면 이재만이나 정호성 등 다른 비서관이 건의한 것 아니냐"고도 질문했지만, 그는 "두 사람(이재만 정호성)이나 저나 지금까지 업무를 하면서 개입이나 건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안 전 비서관은 2013년 5월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 그를 한 번 만나 대통령의 특활비 요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법정에서 떠올린 5년 전 상황은 이렇다.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마치고 청와대 서별관 밖 정원에서 남 전 원장을 만나 "원장님, 대통령께서 지난번에 청와대 예산지원 관련해서 원장님과 말씀 나누셨다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남 전 원장은 안 전 비서관의 말을 끊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라고 했다. 안 전 비서관은 그 말로 미루어 "대통령에게 가져다주는 돈과 관련해 남 원장이 이미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눈 상태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안 전 비서관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당시 "남 원장이 제 말을 듣고 4월달에 (특활비를 청와대에) 안 준 게 생각나 깜짝 놀라 했다"는 말도 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그런 진술을 했던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안 전 비서관은 세 시간 넘게 진행된 증인신문 내내 생각을 집중하거나 똑똑히 발음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한 문장을 완전히 말하지 못하고 단어 단위로 뚝뚝 끊었고 말끝을 흐렸다. 재판장이 "똑바로 얘기해 달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검사가 "증인 혹시 오늘 진술하는 데 불편한 것이 있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안 전 비서관은 많은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다가 재차 질문을 받으면 "들은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1일 안봉근 전 비서관의 모습. 그는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이재만 비서관 등 10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사진은 첫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해 9월 1일 안봉근 전 비서관의 모습. 그는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이재만 비서관 등 10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사진은 첫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해 9월, 일 년 가까운 행방불명 끝에 청문회 불출석 재판 때문에 법정에 나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당시 감색 넥타이와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안 전 비서관은 재판이 끝난 뒤 몰려든 취재진에 당황하기보다는 침착한 표정으로 자신이 타고 가야 할 차를 찾았다. 그 후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을 구속기소했고, 두 사람은 중앙지법의 다른 재판부(형사합의 33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이재만 전 비서관이 세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제 형사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라 답변을 드릴 수 없다"며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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