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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2018.03.30 01:23 종합 36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여의도 증권가에서 현대차그룹 주식은 ‘버린 카드’ 취급을 받는다. 증시가 상승 흐름을 보인 최근 3년 새 국내 30대 그룹의 주식가치(시가총액)는 평균 30% 늘어났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나홀로 20% 역주행했다. 10대 그룹 중 시가총액이 떨어진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했다. 그룹의 맏형인 현대차의 주가는 8년 전 기록한 최고가 대비 현재 반 토막 수준이다.
 
원인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중국시장의 판매 부진 등에 따른 실적 악화, 노조의 강경투쟁으로 인한 고임금·저효율 구조, 고급차종과 전기차·커넥티드차 등 미래 먹거리 부진 등이 단골 메뉴로 오른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얘기하다 보면 더 큰 걱정을 털어놓는다. 다름 아닌 기업지배구조 리스크다. 쉽게 말하면 현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몽구 회장의 건강악화설이 가세한다. 정 회장의 나이는 올해로 만 80세다. 그는 그룹 총수로서 경영을 진두지휘한다. 주변엔 그를 오래 보필해온 올드보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 최고 경영진은 글로벌시장을 향한 속도전으로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 자동차기업으로 일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잇단 판단 미스로 시장의 실망과 우려를 낳았다.
 
서울 강남 삼성동에 15조 원 이상을 들여 국내에서 가장 높은 사옥을 짓기로 한 게 대표적 사례다. 또 세계 자동차업계가 친환경·고안전·전장화의 질적 경쟁으로 가는데도 거꾸로 생산라인을 늘리는 양적 성장에 계속 몰두했다. 그러다 판매 부진으로 실적이 나빠지자, 협력업체들에게 납품단가를 일괄 인하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전가해 왔다. 국내 소비자들에겐 이렇다 할 성능 개선 없이 디자인만 바꾸면서도 차값을 올린다는 불만을 샀다.
 
현대차 경영진은 또한 단기 실적에 치중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했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2.4%로 4~6%대인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그런 방식들을 동원해 지난해에도 4조원대의 순익을 올렸다. 노조는 ‘회사가 계속 잘 나가고 있으니 우리도 나눠 먹어야겠다’고 강하게 나올 명분을 저절로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28일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단순히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차원을 넘어 그룹 최고 경영진이 교체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승계 작업이다.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쥐면 글로벌 감각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로 최고 경영진을 바꾸려 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금 위기에 직면한 게 맞다. 현대차의 경쟁력 약화와 ‘갑질 경영’ 때문에 납품·협력업체들을 포괄한 자동차산업 생태계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쓰러지면 한국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고 공적자금까지 동원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과 동시에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길 바란다. 위기 돌파의 각오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삼성동 사옥 건설계획의 철회다. 땅을 되팔아 미래 성장동력에 투입해야 한다. 납품업체들을 제대로 대접해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R&D에도 손을 잡아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AS를 확대하고 차값을 내리는 정책도 쓸 만 하다.
 
이렇게 하면 순익이 대폭 줄고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위기감이 고조될 것이다. 이때 노조와 담판을 지어 회사를 살릴 협력적 노사관계를 어떻게든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측근들에게 “경영권을 잡아도 65세까지만 일할 생각이다. 여생은 평범한 사람으로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자식에겐 회사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올해 만 48세다. 앞으로 17년 뒤 현대차그룹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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