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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학 자율권 없으면 맹모·맹자 나올 수 없다

중앙일보 2018.03.30 00:12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남표 전 KAIST 총장. 대학이 재정을 확보해야 정부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최승식 기자]

서남표 전 KAIST 총장. 대학이 재정을 확보해야 정부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최승식 기자]

약 7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다 2013년 사임한 서남표(82)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전 KAIST를 방문했다. 현재 미국 MI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서 전 총장은 지난 20일 열렸던 KAIST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서남표 전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지자체 주도 교육 시스템 필요
하향 평준화로는 인재 못 키워

그는 총장 재직 시절 테뉴어(종신재직권) 심사 강화, 100% 영어 강의, 무시험 입학전형 도입 등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급진적이었다’는 비판론과 ‘정체한 교육계를 혁신했다’는 긍정론이 공존했다. 다만 사임 당시 논란이 된 특허 도용 등 쏟아지던 의혹은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났다.
 
총장을 사임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교육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여전했다. 특히 대학 교육은 정부 간섭을 받지 말고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소신을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인 ‘공공성 강화’에 대해 그는 “교육 제도는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지만, 적어도 대학 교육 제도만큼은 경쟁이 필요하다”며 “치열한 경쟁 체계를 도입해야 미국 하버드대·MIT·스탠퍼드대 등 글로벌 선도 대학처럼 한국 대학도 국가의 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 교육 시스템에 경쟁 체계와 접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학이 글로벌 대학과 경쟁하도록 놔두는 대신 결과를 책임지게 하면, 결국 경쟁력 있는 대학만 살아남는다는 지론이다.
 
문제는 정부의 간섭이다. 그 역시 2013년 “교육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KAIST 총장직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정부가 대학 교육에 간섭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글로벌 대학을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한국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배경에는 ‘돈’이 있다고 했다. 대학 재정에서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대학 이사회가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인 정부 간섭을 벗어나려면, 대학이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정부가 교육에 크게 관여하는 유럽 국가는 갈수록 대학 경쟁력이 하락하는 반면, 하버드대(36조원)·MIT(12조원) 등 재정적으로 정부 의존도가 낮은 미국 대학은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학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공공성’을 강조한다.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방과 후 학내 영어수업 폐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서 전 총장은 이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교육하자는 생각은 무리가 있다”며 “일률적 기준으로 하향 평준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한국은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미국식 교육 제도다. 서 전 총장에 따르면 미국은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지자체가 이런 권한을 확보한 건 지방세를 중등교육 재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2조586억원의 재원이 필요한 누리과정(만 3세~5세 무상보육)을 전액 국고 지원하기로 했다.
 
그는 “소수의 공무원이 생각한 정책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양한 지자체가 자신들의 환경에 적합한 교육제도를 고민하고 적용하면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성공한 정책과 실패한 정책이 극명히 대비된다. 궁극적으로 실패한 지자체가 성공한 지자체의 교육 제도를 벤치마킹하면 결국 교육 시스템이 개선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또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이나 이사하면서 아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장소를 직접 선택했다”며 “한국도 자율적 교육 제도를 허락해야 맹모가 삼천지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맹자(인재)를 키우려면 교육 시스템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서 전 총장은 “정권이 바뀐다고 대입수능시험 등 교육 정책이 달라지는 건 문제가 있다”며 “2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제도를 수립하라”고 주문했다.
 
대전=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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