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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만에 고향 땅에 묻힌 윤이상 선생 추모식 30일 열린다

중앙일보 2018.03.28 21:27
통영에 조성된 윤이상 묘역. [연합뉴스]

통영에 조성된 윤이상 묘역. [연합뉴스]

이념 갈등으로 타향에서 생을 마감한 뒤 독일에 묻혔던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유해가 고향인 통영 국제음악당 인근 묘역에 비공개 안장됐다. 
 
28일 통영시 등에 따르면 윤 선생의 가족은 지난 20일 통영시 추모공원 내 공설봉안당에 임시로 보관된 유해를 음악당 인근 묘역에 안장했다. 98㎡ 크기의 묘역은 처염상정(處染常淨·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이라는 한자와 ‘윤이상’이라는 한글 이름이 적힌 너럭바위 아래 자연장 형태로 조성됐다. 그 옆에 1m 높이의 향나무와 해송이 심어졌다. 이날 이장식에는 딸 윤정씨와통영 국제음악재단 관계자 몇 명 만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이상 선생 묘역을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이상 선생 묘역을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역에 놓여 있는 너럭바위에 적힌 글귀들. [사진 연합뉴스]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역에 놓여 있는 너럭바위에 적힌 글귀들. [사진 연합뉴스]

 
딸 윤정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 및 가까운 지인들과 소박하고 조용히 이장하고 싶어 다른 곳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며 “이장과 관련해 도움을 받던 충남 수덕사 스님이 이장 날짜를 20일로 하면 좋겠다고 해 그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유해 이장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단체의 집회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날짜를 확정한 뒤 참석할 사람이 있는지 의향을 물어보고 이장 일정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통영시는 이날 이장과는 별개로 윤이상 선생에 대한 추모식은 음악당 인근에 마련된 윤 선생의 묘역에서 예정대로 오는 30일 진행할 계획이다. 
 
윤이상 선생의 묘역은 평소 윤 선생이 통영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히고 싶다는 선생의 유언대로 바다 가까운 곳에 조성됐다. [연합뉴스]

윤이상 선생의 묘역은 평소 윤 선생이 통영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히고 싶다는 선생의 유언대로 바다 가까운 곳에 조성됐다. [연합뉴스]

 
앞서 독일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혀 있던 윤 선생의 유해는 지난달 23일 현지에서 선생의 딸 윤정(67)씨 등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식을 했다. 이어 25일쯤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 선생은 1960년대부터 독일에 체류하며 베를린 음대 교수를 역임했다. 72년 뮌헨 올림픽 개막 축하행사 무대에 올린 오페라 ‘심청’이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유럽 평론가들은 ‘20세기 중요 작곡가 56인 중 한명’으로 그를 꼽았고, 생전에 ‘유럽에서 현존하는 5대 작곡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음악원 건물 동판에 새겨진 위대한 음악가 44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44명 중 20세기 음악가는 윤 선생을 포함해 4명뿐이다.  
 
윤이상 기념관 내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사진. 위성욱 기자

윤이상 기념관 내부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사진. 위성욱 기자

 
하지만 그는 이념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7년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추방됐다. 이후 윤이상 부부가 수차례 방북했고, 김일성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친북 활동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재독 간호사였던 ‘통영의 딸’ 신숙자(1942년생)씨와 경제학도였던 남편 오길남(76)씨 가족의 월북을 윤 선생이 권유했다는 오씨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그의 귀향은 더욱 힘들어졌고 결국 타향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작곡가 고(故) 윤이상. [중앙포토]

작곡가 고(故) 윤이상. [중앙포토]

 
변화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그해 7월에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문 대통령과 동행했다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윤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다. 특히 김 여사가 고인의 고향인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받아와 공군 1호기로 독일까지 수송해 윤이상 선생의 묘소 옆에 심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윤 선생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1969년 추방된 뒤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던 윤이상 선생의 한은 49년 만에야 풀어졌다. 
 
윤이상 선생의 독일 베를린 자택 침실에 걸려 있던 사진. 위성욱 기자

윤이상 선생의 독일 베를린 자택 침실에 걸려 있던 사진. 위성욱 기자

 
반면 통영의 한 보수단체는 지난달 말부터 통영시청 인근에서 유해 이장 반대 집회를 계속 열고 있다. 이 보수단체는 오는 30일 추모식이 열리는 음악당 인근에서 이장 반대집회를 열 계획이다. 통영시는 당일 혹시라도 모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다.
 
통영=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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