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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디자이너] "연극이 법 바꿨죠"…무대에 오른 미혼모들

중앙일보 2018.03.28 14:22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우상조 기자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우상조 기자

 
오호진(44) 명랑캠페인 대표가 청소년 미혼모들을 만난 건 2015년의 일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미혼모 시설 '두리홈'에서 30여명의 미혼모들과 매주 치유 워크숍으로 연극을 만든 일이 계기가 됐다. 미혼모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없을까. 오 대표는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대본에 녹이고, 배우로 만들어 무대에 세웠다. 16세부터 29세까지 미혼모 7명이 배우로 참여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극 '미모되니깐'은 이렇게 탄생했다.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미혼모 연극 '미모되니깐' 제작
양육비이행관리법 등 개정 성과

 
명랑캠페인을 차리기 전 오 대표는 대형 영화제작사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하며 영화 '말아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문화 콘텐트가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몸으로 느낀 계기였다. 오 대표는 2013년 직장을 나와 '문화예술로 사람을 이어주는 캠페인 전문 제작회사'를 차렸다. 바로 명랑캠페인이다. 2015년에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사회적기업 사업화개발비 지원금이 '미모되니깐'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됐다.
 
'미모되니깐'은 시작부터 반응이 좋았다. 2015년 11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초연부터 150석 만석을 기록했다. 오 대표는 2016년 '미모되니깐'을 시즌2로 확대해 30∼40대 양육 미혼모들을 배우로 참여시켰다. "우리 아이가 그쪽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이 불편하니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 달라"는 연극 대사는 미혼모의 실제 경험을 무대로 옮긴 것이다.
연극 '미모되니깐'의 공연 모습. 미혼모들이 직접 배우가 돼 무대에 오른다. [사진 명랑캠페인]

연극 '미모되니깐'의 공연 모습. 미혼모들이 직접 배우가 돼 무대에 오른다. [사진 명랑캠페인]

 
2016년 5월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으로 연극을 본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기 시작 직후부터 미혼모 지원 관련법 개정안 2개를 대표 발의했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2017년 12월, '양육비이행관리법'은 지난 2월 말 본회의를 통과했다. 미혼모들이 직접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꽃씨가 돼 실제 삶을 바꾸는 입법이라는 결실이 된 셈이다.
 
오 대표의 미혼모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 10회 공연이 예정된 연극 '모(母)놀로그'는 실제 미혼모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뮤직토크쇼다. 오 대표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면 관객들은 미혼모를 비난하지 않는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공감해준다"고 말했다. '미모되니깐'과 '모놀로그'가 객석에서 일으킨 화학작용이다.
 
"미혼모들의 연극이 만들어낸 변화의 경험을 살려 더 깊숙이 시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게 오 대표의 바람이다. 연극 무대에서 잠시 눈을 돌린 오 대표의 다음 스텝은 서울 홍제동 도시재생사업이다. 젊은 인구가 떠나 활기가 필요한 마을에서 주민과 함께 직접 밥을 하고 나눠 먹으며 마을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오 대표는 "주민들과 만나 어떤 콘텐트로 도시재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연극 무대에서나 현실에서나 언제나 사람에 고정돼 있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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