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정화 공무원 징계 방침 후폭풍...정부마다 진상조사?

중앙일보 2018.03.28 11:16
28일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정화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일각에서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위 조사 발표
"실무자들 위법·불법 행위" 신분상 조치 요구
교육계 "정책 타당성 책임 추궁은 지나쳐"
'책임 회피' 복지부동으로 이어질 수도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책의 큰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의 몫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건 과도하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왼쪽)와 박근혜 전 대통령,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중앙포토]

국정교과서(왼쪽)와 박근혜 전 대통령,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중앙포토]

교육계의 다른 인사도 “이 정부도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촛불시위 내용을 넣지 않았느냐. 자기 정권에 유리한 내용을 교과서에 넣겠다는 시도는 이전 정권과 다르지 않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담당자들을 징계하면 이 정부 방침에 따른 공무원들 역시 다음 정부에서 징계를 당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위)을 꾸리고 이달까지 7개월간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 중에 있었던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 조사했다.   
 
진상위는 이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초기부터 단지 ‘청와대의 지시’ ‘장·차관의 지시’라는 이유로 많은 위법 행위를 기획·실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익을 추구해야 할 책무를 잊어버린 행위”라고 발표했다. 진상위는 잘못이 드러난 공무원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중 성실의무(56조), 공정의무(59조), 품위유지의무(63조) 위반 등으로 신분상 조치 요구하는 등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발표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 최대 교원 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은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는 수평적 구조가 아니라 수직적 체계다. 위에서 결정하고 지시한 사안에 대해 실무자가 반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업무 프로세스상 공무원이 맡은 실무 범위 내에서 위법한 사안이 발견됐다면 이에 대한 징계 등은 가능하나 특정 정책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가공무원법 제57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또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에도 공무원은 국가 정책에 반대하거나 국가 정책의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김 대변인은 “이처럼 공무원법과 복무규정에 복종 의무를 정해놓고, 이들에게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책임마저 묻는다면 향후 어떤 공무원이 국가 정책을 위해 헌신하겠냐”고도 반문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도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나 대입 수시전형에서 수능 최저등급 폐지 등의 정책 역시 청와대 등 정치인들이 제시한 사안이지, 공무원이 직접 기획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면서 “이 정책들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데 다음 정권이 이를 심판한다고 나서는 것 또한 온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준식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2016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교과서 현장검증본 공개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준식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2016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교과서 현장검증본 공개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상 조사 등으로 공무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일이 반복되면 '관료사회의 복지부동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역거점 국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진상위 조사 결과를 보고 우리나라 100만명의 공무원이 어떤 생각을 하겠냐”면서 “상부 명령에 복종하건 불복종하건 자신에게 불리하니, 결국 의욕적으로 정책을 맡아 추진하기보다는, 책임이 크고 민감한 사안은 회피하는 '될대로 되라' 식의 복지부동이 팽배해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그는 또 “진상조사 등 과도한 책임 묻기가 반복되면 공무원의 정책 역량과 책임 의식을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결국 공무원이 내놓는 정책의 품질이 떨어져 국민 전체의 피해로 돌아가게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