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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CEO 인터뷰] "한미약품과의 협업, 실패로 결론짓지 말라"

중앙일보 2018.03.28 05:00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인 데이비드 릭스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제약 업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라며 "아마존의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제약 업계의 의약품 공급 시스템과 헬스케어 산업을 바꾸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 한국릴리]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인 데이비드 릭스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제약 업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라며 "아마존의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제약 업계의 의약품 공급 시스템과 헬스케어 산업을 바꾸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 한국릴리]

한국 온 릴리의 데이브 릭스 회장…릴리는 세계 10대 제약사 
전 세계 10위권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이하 릴리)는 지난해 매출 228억7000만 달러(24조6800억원) 중 23%인 52억8000만 달러(5조7000억원)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썼다. 이는 국내 10대 제약사가 같은 기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총금액(1조1272억원)의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릴리는 전 세계 임직원 4만명 중 9000명이 연구·개발 분야에 종사하는 등 혁신 신약 개발에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에 방한한 데이비드 릭스 릴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싸고, 더디고, 실패율이 높은' 제약 업계의 특성상 연구·개발에 올인해도 당장 성과가 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바이오 벤처기업을 발굴해서 신약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이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미국 제약사 릴리는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약학자 일라이 릴리가 1876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웠다. 릴리는 인슐린과 페니실린, 소아마비 백신 등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프로작 등 향정신성 약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 판매한 제약사다.  
 
지난해 1월 일라이 릴리의 글로벌 회장 겸 CEO로 부임한 릭스 회장은 미국·중국·캐나다 제약 시장을 두루 경험했다. 그는 이날 한미약품 등 국내 제약사 관계자들과 만나고 릴리와 관련된 임상 시험에 참여한 연구진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후 방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싸고 더디고 실패율 높은 바이오…신약 개발 기간 절반으로"
릴리는 신약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는 '차세대 연구·개발 모델'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단계를 절반 수준인 5년 밑으로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릭스 회장은 "적절한 복용량에 대한 검토 과정,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를 등록하는 단계까지도 세세하게 바꾸는 중"이라며 "제약 업계의 높은 임상 시험 실패 확률을 극복할 수 있는 연구 모델을 우리가 새로 정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외 할 것 없이 모든 제약사가 강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해 릭스 회장은 "각국 정부 및 대학 산하 연구 기관들이 보유한 기초 과학·생물학적 정보와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며 "역사는 짧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벤처기업들을 발굴해 키우는 것도 우리와 벤처 기업 모두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란 외부 기업들과 협업해 기술·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경영 전략이다. 특히 제약 업계에서는 핵심 기술을 가진 신생 기업들과의 기술 제휴, 공동 개발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벤처캐피탈(VC)에 투자하는 것도 릴리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그간 릴리의 벤처캐피탈 투자로 태어난 바이오 벤처 기업은 100여곳이 넘는다. 릭스 회장은 "우리가 관심이 있는 치료 분야와 약물을 연구하는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며 "릴리의 대외 연구 조직에서는 매년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며 숨어있는 바이오 벤처기업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릴리는 영국 정부가 2015년 결성한 '치매 발견 펀드'(DDF)에도 참여하고 있다. DDF는 릴리·노바티스·GSK 등 글로벌 제약사 7곳이 참여해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뇌 신경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벤처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한미약품과의 협업, 실패로 결론짓지 말라" 
릴리는 지난달 국내 제약 업계에서 한미약품 때문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한미약품이 "릴리에 기술수출했던 면역질환 신약 후보 물질 HM71224에 대한 임상 2상이 중단됐다"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한미약품이 2015년 릴리에 약 7억 달러(약 7500억원)를 받기로 하고 기술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이었다. 
한미약품 측은 "목표하는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임상을 중단한 것"이라며 "류머티즘 관절염 외 다른 적응증을 개발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릭스 회장은 그러나 이번 임상 중단에 대해 "임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움은 크지만, 이는 신약 개발 과정 중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며 "실패로 결론짓기 보다는 이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2008년부터 2년간 중국 지사를 이끈 적이 있는 그는 "중국 제약 시장과 한국 제약 시장이 여러 공통분모가 많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상당히 복잡한 시장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국보다 발전이 더디지만, 유사점이 더 많다. 중국도 한국처럼 기반이 튼튼한 현지 제약사가 수백 개에 달한다. 정부가 신약의 승인 과정 등을 정책적으로 개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공통점이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글로벌 제약 업계의 최근 화두 중 하나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최근 처방의약품의 온라인 판매 허가를 받는 등 제약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이다. 당장은 의약품 배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마존이 기존 대형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과 영업에도 직접 뛰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에 대해 릭스 회장은 "아마존이 제약 업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라며 "아마존의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제약 업계의 의약품 공급 시스템과 헬스케어 산업을 바꾸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마존이 아니더라도 제약 업계가 IT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환자의 치료 결과·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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