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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선 이미 시행” “혼란만 가중” 불붙는 지방공휴일 논란

중앙일보 2018.03.28 01:43 종합 20면 지면보기
지난해 5월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37주기 5·18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80년 5월의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해 5월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37주기 5·18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80년 5월의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올해 70주년을 맞는 제주 4·3 희생자추념일을 앞두고 지방공휴일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정부의 반대에도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지방공휴일을 도입한 것은 제주가 처음이다.
 

지자체들 지방공휴일 귀추 주목
제주, 4월 3일 지방공휴일 추진에
정부 형평성 등 이유로 반대 입장

도의회, 정부의 반대에도 재가결
인사처·행안부 수용 여부 검토중

제주도는 “지난 20일 제주도의회를 통과한 ‘제주특별자치도 4·3 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에 따라 4·3추념일인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정부가 지난 1월 해당 조례에 대한 재의요구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힌 지방공휴일을 자체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앞서 제주도의회는 지난 20일 정부의 재의 요구로 제주도가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4·3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 재의요구안’을 가결한 바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도의회의 재의결을 제주도민의 뜻으로 존중해 수용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튿날인 21일 해당 조례를 공포했다. 이 조례안은 4·3 희생자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휴일 적용 대상은 제주도의회와 제주도 본청·산하기관 등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지방공휴일제를 시행 중인 외국의 사례를 들어 조례 제정을 추진해왔다. 일본의 경우 오키나와(沖縄)현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6·23 지방공휴일이 국가공휴일로 격상된 바 있다. 1945년 6월 23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본토 내 유일한 지상전인 오키나와전(戰)이 종료된 날이다. 당초 오키나와는 1974년 법적 근거 없이 지방공휴일을 시행하던 중 정부가 폐지를 시도하자 1991년 지방자치법을 개정시켜 공식 공휴일로 인정받았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는 지방공휴일제가 활성화돼있다. 미 연방법에 따라 50개 주와 1개의 특별구(워싱턴 D.C.) 등 전체 주에서 지방공휴일을 시행 중이다. 시나 군(카운티) 자체 공휴일도 있다.
 
제주도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자체 조례에 따라 지방공휴일 지정한 것을 놓고 전국 지자체들이 주목하고 있다. 4·3과 유사한 기념일이 있는 타 자치단체들 역시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의 5·18민주화운동이나 대구광역시의 2·28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번에 제주도가 지정한 지방공휴일은 정부가 이미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공공기관 휴무에 따른 혼란과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현재 행정안전부 등과 지방공휴일과 관련한 조례 수용 및 올해 4월 3일에 대한 공휴일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상당수 제주도민 역시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휴일 적용 대상이 제주도의회와 제주도 본청·산하기관 등 공무원에 국한되는 점 때문이다.
 
부수욱(30·제주시 회천동)씨는 “지방공휴일을 도입한 취지를 생각했을때 전체 도민이 쉬지 않고 공무원 위주로 쉰다면 차라리 조례를 만들지 않는 편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광삼 법무법인 더쌤 대표변호사는 “지방공휴일의 원만한 시행을 위해선 지방이 자치입법으로 휴일을 정하고 정부에 최종결제를 받는 방식이 가능한 법령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소요사태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대거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것이 현대사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954년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이르는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경호·최충일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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