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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글로컬] 결국 제 밥그릇 지키기 된 선거구 획정, 선관위에 맡기자

중앙일보 2018.03.28 01:37 종합 20면 지면보기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1.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오전 대구시의회 건물 뒤편 외벽에 사다리가 세워졌다. 어두운 색 점퍼를 입은 강황 당시 대구시의회 의장과 시의원 21명은 사다리를 타고 2층 비상구를 통해 시의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에서 시의회 진입을 막아선 사람들을 피해서였다. 이들은 어두컴컴한 본회의장에서 서둘러 안건을 처리했다. 4인 선거구 11곳을 모조리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내용이었다. 본회의는 3분 만에 끝났다.
 
#2. 그로부터 12년 2개월 지난 2018년 3월 19일 대구시의회 임시회 안건에 다시 4인 선거구 6곳을 신설하는 획정안이 올라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치러진 소관 상임위에선 시의원들이 몇 차례 논박을 주고받는가 싶었다. 하지만 45분간의 정회 후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온 시의원들은 5분 만에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회의가 끝난 뒤에야 방청객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종이엔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나누는 내용의 수정안이 정리돼 있었다.
 
6·13 지방선거를 86일 앞둔 지난 20일 전국 15개 시·도의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됐다. 전국 기초의원 선거구 1031곳에서 4인 선거구가 도입된 곳은 28곳(2.7%)에 불과했다.
 
서울시와 7개 광역시·도에선 4인 선거구가 1곳도 나오지 않았다. 중소정당과 정치신인들이 “거대정당들이 야합을 통해 지방의회를 독점하려 한다”는 비판을 하는 이유다.
 
4인 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4명의 대표를 뽑는 선거 방식이다. 정치 다양성과 사표(死票) 방지라는 장점이 있어 2005년 8월 도입됐다. 하지만 이 방식은 지역의 지지율을 독점하고 있는 정당에겐 불리한 제도여서 선거구 획정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빚었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갈등은 지방의회가 의결권을 갖고 있는 한 끝나지 않는다. 속된 말로 ‘제 밥그릇’을 스스로 내놓을 수 없어서다. 이념 문제가 아니다. 실제 서울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에서 한국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뜻을 함께한 게 대표적 사례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전담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공신력 있고 권위있는 중앙선관위가 기준과 원칙을 세워 선거구 수와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밥그릇’과 상관 없는 사람이 밥을 나누는 게 맞다.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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