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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각 투숙, 중관춘 방문 … 7년 전 김정일과 같았다

중앙일보 2018.03.28 01:06 종합 4면 지면보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열차가 27일 오후 4시쯤(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역을 출발하고 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열차가 27일 오후 4시쯤(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역을 출발하고 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6~27일 1박2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침에 따라 동북아시아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첫 해외 방문 베이징 24시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이뤄진 김정은의 방중과 북·중 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에서 주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북한 대표단 체류 기간 내내 국가원수급 의전을 제공했다.
 
의전 수준은 2015년 9월 항전 승리 70주년 열병식 참석차 방중한 당시 2인자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훨씬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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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날 북측 대표단이 중국 수뇌부가 국빈 접견과 만찬 장소로 사용하는 인민대회당으로 향할 때는 중국 공안의 사이드카 호위를 받았다. 앞서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대회당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가 폐쇄됐고, 광장에 있던 관광객들이 쫓겨나기도 했다. 인민대회당 주변은 지난 20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 때보다 경계가 더 철저했다. 북한 대표단 숙소인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는 정문 건너까지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천안문 광장 관광객 갑자기 내쫓아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북한에서 온 귀빈이 댜오위타이 18호각에 묵는다는 소식이 있다”고 귀띔했다. 18호각은 외국 정상들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 주로 묵는 곳이다. 2011년 방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또 다른 현지 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북한 인사의 신분을 즉각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번 회담을 양국 공산당 차원의 당 대 당 외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사실 이런 행사는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가 주도한다”고 전했다.
 
27일에도 베이징 일대의 경비는 삼엄했다. 댜오위타이 모든 출입구에는 공안이 배치됐고, 200m 밖에서부터 출입이 통제됐다. 주요 도로 곳곳이 통제되기도 했다.
 
댜오위타이에 머물던 북한 대표단 일행은 이날 오전 빠져나가 중관춘(中關村)으로 향한 것이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중관춘은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방중했을 때에도 찾아가 정보기술(IT) 관련 업체들을 시찰하며 중국 기업의 발전상을 확인한 곳이다. 하지만 이번 대표단의 중관춘 체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숙소 댜오위타이 200m 밖서 통제
 
북한을 의식한 듯 중국 당국은 인터넷 단속에도 적극 나섰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薄)에서는 ‘북한(朝鮮)’이 금지어로 지정돼 검색이 차단됐다. ‘김정은’을 검색하면 과거 관련 뉴스만 제공됐다.
 
하지만 중국 당국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막지 못했다. 26일에는 중국 웨이신(微信·모바일 메신저) 등에 “김정은이 탄 열차가 오전 8시쯤 육로로 랴오닝(遼寧)성 후루다오(葫蘆島)시를 거쳐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도로 곳곳이 봉쇄돼 많은 시민이 출근에 지장을 겪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동북 지역에서 베이징·톈진(天津)으로 향하는 다수의 열차가 김정은 전용열차로 인해 연착됐다”는 글도 올라왔다.
 
통제된 도로를 달리는 북한 인사를 태운 차량의 모습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게재되기도 했다.
 
 
김정일 방문 때처럼 모든 정보 깜깜
 
단둥역 출입구에 가림막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단둥역 출입구에 가림막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27일 오전까지 북한 대표단의 행적은 추적됐다. 이들이 탄 차량 통과를 위해 중관춘 도로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 사진 등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하지만 이날 오후부터 대표단의 행적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 무렵 로이터통신 등은 “오후 4시10분쯤 북한 대표단을 태운 특별열차가 베이징역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도 북한 요인이 탑승한 열차가 베이징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곧이어 베이징 시내의 도로 통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바뀌지 않은 북·중의 비밀주의=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 행적은 생전 모두 8차례 방중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관행을 여러 면에서 답습한 것이다.
 
우선 특별열차 편을 이용한 점이 그렇다. 당초 서방 국가인 스위스에서 학생 시절을 보낸 김정은이 해외 방문에 나서면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항공편을 이용할 것이란 예상이 유력했다.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철도 이동은 20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동 경로 전역에서의 경호와 기존 철도 운행 조정 등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애용하던 특별열차는 7년 만에 베이징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북·중 양국의 철저한 비밀주의 역시 김정일 위원장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중국 당국은 특별열차에 누가 탔는지는 물론 북한 대표단이 방중했다는 사실조차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쏟아지는 질문에도 “아는 바 없다”로 일관했다.
 
 
중, 검색 막았지만 행적 SNS서 퍼져
 
이 때문에 1박2일, 24시간의 베이징 체류 기간 내내 외신기자들은 공안 당국의 삼엄한 통제 속에서 북한 대표단 차량과 숨바꼭질을 벌여야 했다. 이번에도 김정일 시대의 관행대로 방중 사실에 대한 공식 발표는 김정은 일행의 열차가 북·중 국경을 넘어 북한 땅에 도착한 이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제공한 최고 수준의 의전과 경비·경호도 김정일 시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때에는 베이징 중심가 도로인 창안제(長安街)를 전면 통제한 것은 물론 도로변 건물에서 창문으로 바깥을 내려 보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이번에도 북한 대표단 일행의 동선 주변에는 엄격한 통제와 삼엄한 경비가 재연됐다. 다만 과거 장쩌민(江澤民) 집권 시절 김정일이 방중하면 7명의 상무위원 전원과 만나게 하는 등 파격적인 예우가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대학교수는 “김정은의 방중이 당당하고 공개적인 모습으로 이뤄졌다면 북한이 표방하는 ‘정상 국가’로서의 이미지는 물론 김정은 개인이 아버지 김정일과 다르다는 점을 과시할 수 있었다”며 “과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 게 의아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서울=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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