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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젊은이 위한 3000원 김치찌개의 행복

중앙일보 2018.03.28 00:10 종합 25면 지면보기
‘청년식당 문간’에서 김치찌개를 서빙 중인 이문수 신부.

‘청년식당 문간’에서 김치찌개를 서빙 중인 이문수 신부.

1000원짜리 3장만 들고 가면 김치찌개와 ‘무한리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안 건물 2층에 있는 ‘청년식당 문간’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문간’ 사장님은 10년차 가톨릭 사제다.
 

정릉 ‘청년식당 문간’ 이문수 신부
밥 무한리필, 적자는 기부로 메꿔
롤모델은 백종원, 체인점 내고파

지난 21일 식당에서 만난 이문수 신부(44)는 사제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찌개 냄비를 나르고 있었다. 16평(53㎡) 크기 식당 30개 좌석은 점심시간 내내 손님들로 붐볐다.
 
식당 이름에 ‘청년’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3년 전 한 청년이 고시원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청년들이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신부는 자신이 소속된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동의를 얻어 2016년 3월부터 개업을 준비했다.
 
그는 수개월 간 주변의 ‘창업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사회 사업가, 청년문화 기획자, 식당 운영 경험자는 물론, 노량진 고시원에 사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그에게 좋은 스승이 됐다. “노량진에서 한끼 싸게 먹을 수 있는 게 3000원짜리 컵밥이다. 그런데 3만원 정도 되는 공무원 수험서 한 권 사려면 이 컵밥도 열끼를 굶어야 한다”는 공시생의 말은 이 신부의 마음을 후벼팠다.
 
식당 맞은편에 마련한 북카페(33㎡). 4월 초 오픈할 이 북카페는 청년들이 즐겨 읽는 자기계발서, 소설 등 기부받은 책 600여 권을 뒀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식당 맞은편에 마련한 북카페(33㎡). 4월 초 오픈할 이 북카페는 청년들이 즐겨 읽는 자기계발서, 소설 등 기부받은 책 600여 권을 뒀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창업 스터디는 계속됐다. 서울시 ‘무중력 지대’ ‘십시일밥’ 같은 청년 공간을 탐방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필요한 건 큰돈 들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창업 성공의 지름길은 단골을 만드는 것이란 점을 깨달았어요.” 무난하고 대중적인 김치찌개를 단품 메뉴로 정했다.
 
김치찌개 가격에 대해 이 신부는 “월세 150만원, 요리사 한 명의 인건비, 재료비 등을 반영했을 때 식당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김치찌개 100인분은 팔아야 하루 운영비 30만원을 맞출 수 있는데, 아직 60~70인분 정도에 그친다. 쌀이나 반찬 기부로 적자를 메꾸고 있다. 수도회에서 지원해준 계약금 2000만원은 식당의 수익금으로 이 신부가 조금씩 갚아 나가야한다.
 
식당 이름 ‘문간’에는 청년 누구나 편히 드나들 수 있는 문간방 같은 곳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담겨있다.
 
식당과 가까운 국민대학교 학생 김모(27)씨는 “근처에서 자취를 해 매주 몇 끼는 이곳에서 먹는다. 밖에서 한끼 먹으면 카페 아르바이트로 버는 시급이 날라간다. 학교식당도 3000~4000원이 드는데, 찌개를 3000원에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체 손님의 70% 정도가 매주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다.
 
이 신부 역시 한 때 ‘배고픈 청년’이었다. 그는 서울 경복고를 졸업한 후 삼수 끝에 1995년 명문대 공대에 입학했다.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는 이때까지 행복이란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해 돈 많이 벌어서 일찍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6년 겨울방학 때 경험한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계기로 신부가 되기로 마음먹고, 99년 수도회에 들어가 200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두 달 간 요리학원도 다녔지만 요리 실력은 아직 초심자에 가깝다. 지금은 홀 서빙만 맡고 있지만, 언젠가 주방으로 ‘진출’하는 꿈을 꾼다. 그는 “대중적인 음식을 싸게 파는 ‘문간’ 체인점을 여러 개 내고 싶다. 롤모델은 요리연구가 겸 사업가 백종원”이라며 웃어보였다. 
 
글·사진=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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