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즘

도덕의 계보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요즘의 뉴욕은 몸값 높은 사람들이 고층빌딩 모양의 금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장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따금 맨해튼을 벗어났다가 돌아올 때, 저 멀리 쿠션 위에 꽂힌 핀셋들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금고-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지는 이상한 희열과 좌절감은 매번 새롭다. 돈의 도시, 돈을 위한, 돈에 의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 괴물 같은 도시의 특성이 시각적으로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표현될 수가 있다니!
물론 뉴욕에 대한 고상한 이미지들이 있다. 뉴욕타임스와 우디 앨런, 수전 손택과 앤디 워홀의 뉴욕, 예술과 보헤미안, 자유주의자들의 뉴욕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미지들에 차츰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일테면 다양한 인종과 다운 타운의 살벌함으로 유명했던 1980년대 뉴욕에 대한 우디 앨런의 환상은 어떻게 그렇게 랄프 로렌의 피케 셔츠처럼 티끌 없는 안락함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 환상은 엄청나게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 세계가 완벽한 가상이라는 것, 한 손에 와인잔을 쥔 주인공이 늘어놓는 말들이 고상한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것은 특히나 트럼프의 시대에 명백해지고 있다.

잃어버린 환상
이방카는 뉴욕 사교계에서 완전히 끝장났어. 한 자부심 넘치는 뉴요커는 그렇게 말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녀가 어퍼웨스트사이드의 고급 맨션에서 벌어진 민주당을 위한 자선 파티에 나타난다면 모두가 자리를 피하고 말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사교계’에 나타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녀는 더 이상 ‘사회’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음모론을 통해 묘사하는 미국 가장 꼭대기의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사회 밖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채로 살아가는 것이 미국의 전통이므로.

가짜 여명
그렇다.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정글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상 순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리버럴들은 혹시 자신의 관대함을 과시하려는 금고 주인들의 허영심에 빌붙어서 생존하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최고의 수전노가 사랑하는 애인의 방을 꽃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고는 행복해하듯이, 이 냉혹한 금고 주인들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와인잔을 든 채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을 기꺼이 허용해주는 독특한 순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달할 때, 혹은 와인잔을 쥔 사람들이 자신들이 늘어놓는 헛소리를 진실로 오해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세기의 부부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들은 화해할 것인가, 이혼할 것인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2005년 단편소설 ‘영이’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단편집 『02』 『더 나쁜 쪽으로』,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 쓰며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