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萬山磅礴必有主峰<만산방박필유주봉>

중앙선데이 2018.03.24 01:00 576호 34면 지면보기
漢字, 세상을 말하다 
“막사 안에서 세운 계략으로 천리 밖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이 책사 장량(張良)의 용병술을 표현한 『사기(史記)』 구절이다. 이후 운주유악(運籌帷幄)은 탁월한 전략가를 일컫는 말로 굳어졌다. “높게 봐야 멀리 보인다”는 고첨원촉(高瞻遠瞩)은 선견지명의 뜻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재선되자 사설을 통해 “고첨원촉과 운주유악의 영수(領袖)”라고 찬양했다. 중국판 ‘용비어천가’로 손색없는 표현이다.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개헌팀의 부조장을 맡은 왕후닝(王滬寧)은 1994년 일기에 비슷한 문장을 썼다. 그는 “죽음도 바꿀 수 없는 신념, 동서를 관통하는 지식, 높은 산처럼 우러르는 인격, 고첨원촉의 식견, 백절불굴의 의지, 바다와 같은 포부, 대세를 총람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정치가”라며 “중국의 민주혁명에 이들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인민일보는 또 “만 개의 산이 드높아도 반드시 주봉우리가 있다(萬山磅礴必有主峰)”는 옛글을 인용해 시 주석을 치켜세웠다. 청(淸)나라 증국번(曾國藩)이 참모 진보잠(陳寶箴)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편지는 “황제의 곤룡포가 복잡해도 옷깃만 잡으면 된다(龍袞九章但摯一領)”로 이어진다. 진보잠은 입헌군주제를 꿈꾼 무술변법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의 손자인 역사학자 진인각(陳寅恪)은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수난을 당했다.
 
중국의 20세기가 마오쩌둥의 시대였다면 19세기 대표 인물은 증국번이었다. 19세기 중엽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최대 내전이었던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한 그는 북진만했다면 쉽게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청나라의 신하로 남았다. 역사는 겸양의 정치가로 기록했다. 시 주석의 우상화에 절대권력을 사양했던 증국번의 글을 인용한 건 잘못이다. 증국번이 저승에서 인민일보 사설을 봤다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