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쿠쿠츠카는 이 계획을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었다. 1989년 10월, 로체(8516m) 남벽을 오르기 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줄의 계획도 지킬 수 없었다.
■ 예지 쿠쿠츠카 - 보이텍 쿠르티카
무시무시한 폴란드의 등반 실력…그 황금기 이끈 두 사람
한 명은 8000m 정상, 한 명은 낮더라도 까다로운 곳 고집
위대한 2등은 족발을 좋아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남겼다
미처 몰랐던 1등은 그 아들에게 "겁쟁이"란 말을 들었다

예지 쿠쿠츠카. 라인홀트 매스너에 이어 두 번째로 8000m 14개 오른 그는 괴력의 사나이였다. 중앙포토

보이텍 쿠르티카. 그는 정상 등반 대신 까다로운 등반을 추구했다. 중앙포토
유렉과 보이텍의 다른 스타일, 다른 관점
“가능성이 안 보인다. 포기하자.”
“루트를 바꿔서라도 정상에 가자”
마칼루 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내려던 둘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결국 유렉(Jurek·쿠쿠츠카의 예명)는 단독 등반을 감행했다. 북서능선을 통해 단독 등반에 나섰다. 그리고 마칼루(8463m)는 유렉의 세 번째 8000m 봉우리가 됐다. 1981년 10월 15일이었다. 보이텍은 캠프에서 기다렸다.
“그래 어땠어?”
“정상에 올라갔지.”
폴란드에서는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암벽등반을 할 수 있었다. 얼치기 등반가는 아예 차단한다는 취지였다. 역도로 다져진 유렉은 엄격하기로 소문난 이 과정을 뚫었다. 보이텍은 의외였다. 이미 알프스와 타트라산맥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데, 정규 등산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산악회에 가입돼 있지도 않았다. 폴란드 산악계는 서둘러 산악회에 가입시켰다.
보이텍은 정상보다 특정 목표에 집중했다. 유렉은 위험을 감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보이텍이 세심하고 정갈하고 치밀했다면, 유렉은 직감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보이텍이 기술적이었다면 유렉은 불굴의 도전정신을 지녔다. 보이텍은 원정 캠프에서 책을 읽었고, 유렉은 캠프에서 족발(골롱카)을 즐겼다.
1986년 11월 마나슬루. 따뜻하고 습한 날씨에 눈사태 가능성이 높았다. 보이텍은 등반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마침 유렉은 매스너가 마칼루에 올라 13번째 8000m 등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8000m급 경쟁에서 11-13,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유렉은 등반을 강행하자고 했다. 6000m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이텍은 단호했다.
“여기서 관두자. 너무 위험하다.”
유렉은 맞받아쳤다.
“위험은 감수해야지. 이미 예견된 상황이잖아.”
결국 보이텍은 빠졌다. 이 와중에 매스너는 로체에서 14좌 완등을 이뤘다. 유렉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음의 전사들…폴란드는 왜 산으로 갔나
산악인들도 억눌렸다. 분출구가 필요했다. 훗날 ‘얼음의 전사(Ice Warriors)’로 불리게 되는 이들은 타트라 산맥의 암벽에 매달렸다. 알프스·피레네·돌로미테(이탈리아 북부)… 그리고 히말라야로 진출했다. 그들의 탈출구였다.

폴란드 산악인들은 공장 굴뚝 페인트칠을 하며 번 돈으로 해외 원정에 나섰다. 중앙포토
폴란드 산악인들의 모습은 기괴했다. 광산 안전모를 썼고 철공소 용접용 안경을 고글로 착용했다. 어디서 주운 듯, 등산화는 자신의 발보다 커보였다. 돈이 없었다. 원정 등반을 앞두고 직접 오리털을 뽑아 침낭과 방한복을 만들었다.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며 장비를 제작했다. 등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제철공장 굴뚝에 올라 때를 벗기고 페인트칠을 했다.
고소에 약했던 유렉, 생각이 많았던 보이텍

예지 쿠쿠츠카가 1980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설 때의 모습. 중앙포토

1974년의 보이텍 쿠르티카. 당시 27살이었다. 중앙포토.
보이텍은 유렉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이때 처음으로 암벽등반을 접했다.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보이텍은 철학적이었다. 등반의 만족감은 천천히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이텍은 영리했다. 무역에 손을 댔다. 당시 유행하던 양가죽 재킷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여와 다시 외국에 내다 팔았다. 현금이 들어왔다. 탄탄한 밑천이 마련됐다. 보이텍은 직관이 있었다. 1990년의 초오유(82101m) 등반 중 위험을 감지했다. 두 말 없이 도중에 하산했다. 등반을 이어가던 동료들은 눈사태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

1981년 마칼루에서 보이텍 쿠르티카, 예지 쿠쿠츠카, 알렉스 매킨타이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4년 알래스카 메킨리 등정을 마치고 동상 치료를 받고 있는 예지 쿠쿠츠카. 펼쳐 든 성인잡지가 눈에 띈다. 중앙포토

1974년 로체에서의 보이텍 쿠르티카. 중앙포토
이들은 같은 해 가셔브룸4봉(7925m) 서벽을 노렸다. 하지만 이 커플은 여기서 헤어지고 말았다. 작은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등반 관점이 달랐다. 유렉은 보이텍에게 매스너와의 8000m 고봉 경쟁을 분명히 선언했다. 유렉은 평소 “전부를 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상을 추구했다. 보이텍은 정상보다 산 그 자체의 까다로움을 선택했다. 평소 8000m급 경쟁에 대해 ‘정상 주워 담기’라며 경멸한 보이텍은 유렉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누가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었다.
더 큰 이별

1986년 칸첸중가 동계등반 성공 뒤 카라반 중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크지슈토프 비엘리츠키(왼쪽)와 예지 쿠쿠츠카.비엘리츠키도 후일 14좌에 모두 올랐다. 중앙포토

가셔브룸4봉에서 볼더링(작은 바위를 등반하는 행위) 중인 보이텍 쿠르티카. 중앙포토
8300m 지점을 넘어섰다. 정상 밑이었다. 눈이 붙은 바위 경사면을 돌파하면 정상이었다. 좋은 홀드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좋은 손잡이는 항상 발의 무방비를 부른다. 그의 발이 갑자기 다급해졌다. 미끄러졌다. 중심을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발을 놀렸다. 유렉의 장갑이 손에서 빠져 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확보지점에 걸어놓은 로프에 압력이 가해져야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로프는 끊어져 버렸다. 그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2000m를 떨어졌다. 10월 24일이었다. 이날 하산하기로 한 유렉의 계획은 헝클어졌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료들이 그의 시신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미망인이 된 셀리나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해, 원정대는 유렉의 시신을 찾아 크레바스에 묻은 것으로 했다. 셀리나는 유렉을 따라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 갔다. 남편과 이별한 지 20년 만인 2009년이었다.
매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유렉은 2인자가 아니다. 그는 위대하다”

보이텍 쿠르티카를 다룬 기사. 중앙포토

보이텍 쿠르티카의 최근 모습. 중앙포토
우리는 2등을 기억하지 못한다. 위대한 2등이 있음에도. 우리는 죽어서야 그 사람이 빛났음을 안다. 주변이 어두워야 별이 빛난다는 사실도 간혹 잊는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산악인들은 별이 됐고, 누구는 그 별을 밝혀주는 더 빛나는 배경이 됐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 예지 쿠쿠츠카의 8000m급 등반
1979년 10월 4일 로체-무산소 등정
1980년 5월 19일 에베레스트-남벽에 루트 개척 등정. 유일한 산소 등정.
1981년 10월 15일 마칼루-단독으로 북서릉 루트 개척 등정
1982년 7월 30일 브로드피크-서릉 루트 개척 등정
1984년 7월 17일 가셔브룸 2봉-북봉과 중앙봉을 횡단하는 루트 개척 등정
1983년 7월 1일 가셔브룸 1봉-동서릉 루트 개척 등정
1983년 7월 23일 가셔브룸 1봉-서남벽 루트 개척 등정
1985년 1월 21일 다울라기리-북동릉으로 동계 초등
1985년 2월 15일 초오유-남동벽에 루트 개척 후 동계 초등
1985년 7월 13일 낭가파르바트-남동벽(루팔벽)에 루트 개척 등정
1986년 1월 11일 칸첸중가-동계 초등
1986년 7월 8일 K2-남벽에 루트 개척 등정
1986년 11월 10일 마나슬루 -북동벽에 루트 개척 등정
1987년 2월 3일 안나푸르나-북벽으로 동계 초등
1987년 9월 18일 시샤팡마-서릉에 루트 개척 등정
1989년 10월 24일 로체-루트 개척 등반 중 추락 사망
■ 보이텍 쿠르티카의 8000m급 등반
1980년 다울라기리-동면 새 루트 개척.
1982년 브로드피크-알파인 스타일. 유렉과 등반.
1983년 가셔브룸 1·2봉-횡단등반. 알파인 스타일. 유렉과 등반.
1984년 브로드피크-횡당등반. 알파인 스타일. 유렉과 등반.
1990년 초오유-남서벽 새 루트. 알파인 스타일.
1990년 시샤팡마-남벽 새 루트. 알파인 스타일.
■ 보이텍 쿠르티카의 주요 등반
1972년 힌두쿠시 코헤 테즈(7015m) 북릉 새 루트 개척
1972년 힌두쿠시 아커 초흐(7025m) 북서면 새 루트 개척
1973년 패티 드루 서면 폴란드 첫 등반.
1973년 패티 드루 북면 유렉과 등반.
1974년 로체 폴란드 첫 동계등정 대원.
1975년 그랑조라스 북면 새 루트 개척. 유렉과 등반.
1977년 힌두쿠시 코헤 반다카(6868m) 북동면 새 루트 개척
1978년 창가방(6864)m 남면 새 루트 개척
1981년 마칼루 7900m까지만 진출. 유렉이 단독등반 등정.
1982년 초오유 동계 등정. 라인홀트 매스너와 등반.
1985년 가셔브룸4봉 서벽 초등. 알파인 스타일.
1988년 트랑고타워(6239m) 동면 새 루트 개척.
1987년~2000년 K2 서벽 등반 시도. 1994년 6650m까지 진출.
1993, 1997년 낭가파르바트 마지노 능선 시도
1995년 남체의 700m 빙벽인 로사르 재등
2001년 비아체라히 타워 5700m 남면 새 루트 개척.

일상등산사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