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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비핵화 향한 남·북·미 최적 접점 … ‘새들 포인트’는 어디에

중앙일보 2018.03.23 00:13 종합 26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을 건 도박에 시동이 걸렸다. 운명의 북한 비핵화 도박은 대북 및 대미 특사단으로 시작됐지만 29일 판문점에서 개최될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북측에 제안한 고위급회담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청와대 및 국가정보원에서 각 1명씩 참석한다. 북한 비핵화가 실패할 경우 심각한 안보 위기는 물론, 정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 가능성은 작지만 성공하면 문 대통령은 영웅이 된다.  
 

문 대통령 운명의 도박 시동
잘되면 영웅, 못되면 최악 위기

김정은 비핵화 땐 노벨평화상도
북한, 기만하면 완전 고립무원

미국은 즉각적 완전한 북 비핵화
북한은 핵 인정, 미국과 군축회담

앞으로 전개될 최대 관전 포인트는 시나리오와 ‘말 안장점’이다. 시나리오는 북한의 의도와 미국의 전략적 접근, 한국의 협상력에 따라 가변적이다. ‘말 안장점’은 새들 포인트(saddle point)라고 하는데 게임이론에서 균형점이다. 말의 등 가운데 오목 들어간 잔등에서 안정된다는 의미다. 미국과 북한의 기대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접점이다. 이 가운데서 한국은 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해법이다. 하지만 해법을 찾는 과정엔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새들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나리오=두 가지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문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할 의지가 확실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2003년 리비아 지도자인 무하마드 카다피처럼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가 보유했던 핵무기와 핵물질을 러시아에 모두 반환한 방식으로 김 위원장이 행동할 때 달성된다. 이런 태도만 가지면 회담은 신속하고 명확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조건의 기본틀을 만들어 남북정상회담에 성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두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그 후속 조치까지 이행되면 북핵은 사라지고 한반도엔 평화가 정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중 등 주변국은 북한의 비핵화 대가로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한국 주도로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도 가능하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당연한 산물이다. 리비아의 비핵화 이후 카다피가 몰락한 것처럼 김 위원장이 북한 사회에서 거세되지 않도록 다양한 조치를 통해 보장해줄 필요도 있다. 카다피는 리비아를 비핵화한 뒤 2011년 갑자기 찾아온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반군에 의해 살해됐다. 김 위원장은 카다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비핵화에 기여한 김 위원장의 노력을 근거로 그의 위상을 높여줘 카다피 현상을 막아주는 것이다. 잘되면 김 위원장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 김 위원장의 겉과 속내가 정반대인 최악의 경우다. 비핵화로 포장한 북한의 핵무장이다. 그가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냈지만 실제론 핵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 숨어있을 때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으로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과 경제제재를 피하면서 핵무장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미 퀴니피액대학의 지난 16∼20일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포기’ 가능성 질문에 미 국민의 65%가 ‘아니다’고 답했다. 북한은 올 상반기 중에 한·일을 타격할 수 있는 핵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이어 완성할 전망이다. 따라서 미국의 맹공을 피하면서 핵무장 하는게 북한의 계산인 것이다.
 
이때 미국의 대응은 두 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정밀 선제타격이다. 그러면 북한은 궤멸될 소지가 높다. 다만 미국의 선제타격 조건은 지난해 말보다 까다로워졌다. 북한의 핵무장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확신이 서야 한다. 이 확신이 없으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은 어렵다. 그땐 대북 경제제재만이 유일한 옵션이다. 하지만 군사옵션이 상실된 상태에서 미국이 경제제재로 북한을 더욱 압박하면 북한은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 북한이 핵탄도미사일로 주한 및 주일미군, 심지어 미 본토까지 협박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와해를 강요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한국은 핵무장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로선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새들 포인트=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와 한국의 게임은 단순한 일반형이 아니다. 복잡한 조건과 불확실성이 뒤섞여 있다. 그렇다고 한 개의 빵을 나눠 먹는 제로섬(zero sum) 게임도 아니다. 따라서 남북은 정상회담에서 복잡한 조건을 단순하게 만들고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북·미 관계 정상화는 순서상 북한 비핵화가 완전히 달성됐을 때나 가능하다. 북한을 유인하는 효과는 있지만 지금은 섣부른 얘기다.
 
비핵화 게임에서 북한 기대이익의 최저치는 리비아나 우크라이나처럼 즉각적이고 완전한 비핵화다. 최대치는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 안전이다. 북한이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최소화한다는 의미다. 일종의 군축협상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임시 동결하지만 북한의 핵을 인정해 달라는 의미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간치는 2005년 9.19 공동선언에 따른 2.13 합의다.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핵심이다.
 
이에 비해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최저치는 2.13합의인데 비핵화를 좀더 빠르게 이행하는 조건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6자회담을 주도한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7일 미국의 소리(VOA)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당시 (9.19)합의를 따라 하려는 것 같다”며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최대치는 과거 경험한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식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비핵화다. 따라서 이번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러한 틀 안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단순한 조건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국과 북한의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파이를 키우는 일이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미 관계 정상화, 종전선언, 경제 원조, 경수로 등 에너지 지원은 물론 카다피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등 김 위원장이 반대급부를 확실히 믿도록 해야 한다. 덧붙여 북한이 게임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밀려올 강력한 후폭풍에도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남·북·미는 이러한 기대치와 조건들 속에서 균형점인 새들 포인트를 찾아가야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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