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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신입생 '이모 삼총사'의 중국학과 적응기

중앙일보 2018.03.21 14:25
“처음엔 아들, 딸보다 어린 학생들과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났지요. 생각해보니 이 나이에 겁날 게 뭐 있나요. 죽으라고 공부하면 따라갈 수 있겠죠.”
배재대 중국학과 '이모 삼총사'인 임순자·양갑수·박금자씨(두번째줄 오른쪽부터)가 20일 오후 '중국의 이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배재대]

배재대 중국학과 '이모 삼총사'인 임순자·양갑수·박금자씨(두번째줄 오른쪽부터)가 20일 오후 '중국의 이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배재대]

 

배재대 임순자·박금자·양갑수씨 올해 새내기로 입학
4년 전 학력인정기관에서 만나 자연스레 자매사이로
집안 일에 아들·딸, 손주까지 돌보지만 '장학금' 욕심

지난 20일 만난 배재대 중국학과 신입생 임순자(75)·박금자(61)·양갑수(61)씨는 20여 일간의 대학생활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중국학과 이모 삼총사’로 불리는 이들은 올해 배재대에 입학한 신입생 2200여 명 가운데 유일한 만학도다. 
 
삼총사가 대학 동기로 입학한 사연은 이렇다. 이들은 4년 전인 2014년 대전의 한 학력인정기관에서 처음 만났다. 다들 “배우는 게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남편, 아들·딸의 든든한 지원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3명의 만학도는 맏언니 임순자씨를 중심으로 동갑내기 친구인 박금자·양갑수씨로 자연스레 자매 사이가 됐다.
 
임씨는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다 한국전쟁으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삼촌이 있는 전북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 더 다닐 수가 없었던 그는 결혼 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 하다 7년 전 아들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왔다.
 
손자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임씨는 학력인정기관에서 중등·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배재대 중국학과 새내기인 '이모 삼총사' 박금자·임순자·양갑수씨(왼쪽부터)가 21세기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배재대]

배재대 중국학과 새내기인 '이모 삼총사' 박금자·임순자·양갑수씨(왼쪽부터)가 21세기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배재대]

 
충남 금산에 사는 박금자씨는 ‘대학생’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도전했다. 학력인정과정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기 위해 금산에서 대전까지 시외버스·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통학했다. 집안일에다 인삼 사업을 하는 남편까지 돕고 공부를 병행하는 고된 시간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양갑수씨는 평생 가족을 돌보던 이른바 ‘현모양처’였다. 결혼 이후 35년을 보낸 그는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다. 부족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10대 아이들처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남편·자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꼭 대학에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삼총사가 중국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뜻밖이었다. 남편을 따라 중국을 자주 오갔던 박씨는 언니·친구에게 “요즘은 중국이 대세여야. 우리 중국어에 한 번 도전해봅시다”라고 제안하면서 원서를 냈다고 한다. 이들은 수시전형(고른기회)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박씨는 “중국에 몇 번 다녀왔는데 글씨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며 “(어학)자격증도 따고 졸업하면 남편 대신 내가 중국에 다니면서 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재대 중국학과 '이모 삼총사'인 임순자·양갑수·박금자씨(오른쪽부터)가 20일 오후 '중국의 이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배재대]

배재대 중국학과 '이모 삼총사'인 임순자·양갑수·박금자씨(오른쪽부터)가 20일 오후 '중국의 이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배재대]

 
임씨와 양씨는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다만 대학 4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게 바람이 있다고 했다. 양씨는 “뒤늦게 대학에 들어왔지만 모든 과정이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비록 나이는 많지만 교수님과 선배님을 깍듯하게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삼총사는 중국어 전공수업 2과목을 수강 중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한자와 달리 간자체인 중국어가 생소해 더 어렵다고 했다. 임씨는 “수업 첫날 교재를 보고 ‘이렇게 어려운 걸 어찌 배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더 힘들겠지만,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배재대는 만학도인 이들 삼총사에게 1학기 장학금을 지급했다. 일정 학점 수준을 유지하면 학기마다 등록금의 20%씩을 지원할 예정이다.
 
중국학과 이기면 교수는 “40~50년 차이가 나는 학생들과 강의를 들으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없었다”며 “만학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수와 조교, 선배들이 모두 돕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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