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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이해보다 국론 분열 부르는 청와대 개헌안 공개

중앙일보 2018.03.21 01: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청와대가 어제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통령 개헌안 전문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오늘은 지방분권 및 국민주권, 내일엔 정부 형태 등을 설명한다고 한다. 내용은 둘째치고 개헌안을 이런 식으로 3일에 걸쳐 나눠 공개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개헌안 국회 통과 불가능한 상황서
쪼개기 홍보라면 진정성 의심 받아
정략보다는 야당 설득에 노력해야

청와대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개정안 전체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게 종합적 판단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현행 헌법은 개헌 발의 주체로 대통령과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를 규정하고 있다. 개헌안을 내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회와 국민 앞에 설명하고 호소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수석비서관이 3일에 걸쳐 쪼개 설명하고 대통령은 해외에서 전자결재하는 형식은 부적절하다.
 
지금 상황에서 헌법의 모든 내용을 6·13 지방선거 때까지 논의해 바꾼다는 건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다. 야당들이 반대하는 만큼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없다. 그럼에도 나라의 가치와 기본 틀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독자 개헌안을 문 대통령이 밀어붙일 수 있게 만든 건 자유한국당의 무책임 때문이다. 개헌 투표를 병행하면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거란 계산 탓에 개헌 약속을 뒤집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가 못하니 내가 하겠다’는 식으로 개헌에 접근하면 안 된다. 청와대의 26일 발의가 실제로 이뤄지면 정국은 급속하게 냉각되고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곧 개헌안 중단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정치권의 합의안 도출을 위해 청와대가 훨씬 더 많은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국회를 비판하는 건 타당한 말이긴 하나 개헌안 발의 강행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고 국회에서 부결되면 개헌 동력은 되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술대에 올릴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개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잊지 말아야 할 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분권과 기본권을 확대하는 개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모든 대통령이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비극에서 탈출하고 국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또한 청와대가 공개한 이번 개정안에는 우리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라기보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만 잔뜩 들어 있다. 더구나 헌법 전문에 아직도 논란이 있는 현대사들을 쭉 나열해 이슈를 만드는 건 국민 단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쪼개기 홍보보다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합의와 설득에 힘을 쏟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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