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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같은 알, 차지게 씹히는 맛 … 입안에 봄이 왔구나

중앙일보 2018.03.21 00:01
충남 서천은 주꾸미 맛 잔치가 한창이다. 수산물특화시장 상인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꽃처럼 말린 주꾸미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천은 주꾸미 맛 잔치가 한창이다. 수산물특화시장 상인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꽃처럼 말린 주꾸미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행여 늦을세라 봄이 잰걸음으로 달려오고 있다. 꽃소식이 더딘 탓에 뭍에서는 계절을 실감하기 어렵다지만, 갯마을은 이미 봄이 여실하다. 멍게며 가리비며 봄을 알리는 갯것이 푸지게 올라오고 있어서다. 봄을 상징하는 바다 먹거리로 주꾸미도 빠질 수 없다. 주꾸미는 가을에도 잡히지만, 미식가는 유독 봄 주꾸미에 들썩거린다. 여름 산란기를 앞두고 머리에 한가득 알을 품은 주꾸미는 봄 한 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어서다. 봄을 맞으러, 계절을 느끼러 3월 중순 주꾸미 주산지 충남 서천으로 떠났다. 한바탕 맛 잔치가 시작된 포구와 시장에서 야들야들한 주꾸미 한입으로 봄을 만끽했다.

충남 서천 주꾸미 맛 여행
소라 껍데기에 알 품은 주꾸미가 쏙
회 치고 데치고 볶고 주꾸미 무한 변신
4월 1일까지 마량포구서 축제 열려

 
 고려청자를 발굴한 주꾸미
 봄철 주꾸미 낚시를 계획하는 여행자가 있을 법하다. 하지만 주꾸미 낚시 여행은 가을로 미뤄두는 게 좋겠다. 봄 주꾸미는 여름철 산란을 앞두고 먹이 활동을 멈추기에 미끼를 던져도 쉽게 물지 않기 때문이다. 짜릿한 손맛을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주꾸미 산지를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주꾸미는 수족관에서 사흘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싱싱한 주꾸미를 맛보려면 부러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슴푸레한 새벽, 주꾸미 출어에 나서는 어선. 프리랜서 김성태

어슴푸레한 새벽, 주꾸미 출어에 나서는 어선. 프리랜서 김성태

 2월 말께 주꾸미 조업이 시작됐다는 충남 서천을 향했다. 지난해 서천 앞바다에서는 주꾸미 20여t이 잡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잡힌 주꾸미의 1%에 불과한 양이지만, 서천 어민들은 “우리 주꾸미를 맛 보면 동해와 남해 것은 못 먹는다”고 입을 모은다. 서천 주꾸미 맛이 뛰어난 이유는 바다 지형과 연관이 있다. 서천 앞바다는 경사 없이 완만하다. 우리나라 대부분 어장이 수심 20~30m에서 주꾸미를 낚지만, 서천은 13~15m에서 조업한다. 얕은 바다여서 먹이도 풍부하니 주꾸미 맛도 더 좋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15일 오전 6시 서천의 주꾸미 조업 중심지 홍원항에 닿았다. 궂은 날씨에도 출어하는 어선이 많았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를 앞두고 음식점마다 주꾸미 확보에 열을 올렸다. 서천군의 협조를 얻어 김진권(57) 선장이 이끄는 4t급 어선 대광호에 승선했다.  

빈 소라 껍데기에 숨어 있는 주꾸미를 갈퀴로 긁어 조업하는 방식을 '고동'이라 부른다. 프리랜서 김성태

빈 소라 껍데기에 숨어 있는 주꾸미를 갈퀴로 긁어 조업하는 방식을 '고동'이라 부른다. 프리랜서 김성태

 주꾸미 조업 방식은 ‘고동’과 ‘낭장’ 두 가지로 나뉘는데, 대광호는 고동 배였다. 알을 낳기 전 숨어버리는 습성을 이용해 소라 껍데기로 주꾸미를 낚는다. 낭장은 조류에 휩쓸려 그물에 걸린 주꾸미를 길어 올린다. 
 홍원항을 나선 지 10여 분, 선원이 굵은 밧줄을 도르레에 감았다. 수면으로 드러난 밧줄에 소라 껍데기가 대롱대롱 달렸다. ‘까꾸리’로 부르는 갈퀴로 껍데기를 훑으니 드디어 주꾸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이 8개 달린 주꾸미는 낙지의 축소판이었다. 몸길이는 15㎝ 정도로 개중에는 주먹 만한 머리가 달린 것도 있었다. 
 주꾸미 빨판에 손가락을 댔다가 흡착력에 화들짝 놀랐다. 하긴. 1976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주꾸미였다. 주꾸미가 콱 붙잡은 고려청자 한 점으로 그해 10월 대대적인 유물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새벽 조업에 나선 김진권 선장이 갓 잡은 주꾸미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새벽 조업에 나선 김진권 선장이 갓 잡은 주꾸미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른 봄인데 제법 주꾸미가 찼다”면서도 김 선장은 조업이 예전만 못하다고도 토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꾸미 어획량은 2000년 4600t에서 2017년 3400t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낚싯배 조업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5년 전 충남 서천·보령에 레저용 낚싯배는 100여 척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0척 이상이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처음으로 주꾸미 금어기(5월 중순~8월 말)를 지정했다. 
 암놈 머리를 꾹 누르니 밥알 같은 것이 비쳤다. 봄 별미로 통하는 주꾸미 알이었다.
 “시중에서 팔리는 주꾸미는 대부분 베트남 산이에요. 알이나 내장을 제거한 채 들여오죠.”
 누군가는 주꾸미 알 맛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3시간 조업 끝에 대광호는 15㎏의 주꾸미를 수확했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서천 앞바다에 알 품은 주꾸미가 가득하기만 바랐다. 
 
 회로, 샤부샤부로, 볶음으로
 서천 최대 재래시장인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프리랜서 김성태서천 주꾸미 축제를 앞둔 15일 오후 충남 서천 수산물특화시장에서 상인이 주꾸미 등 수산물을 선보이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서천 최대 재래시장인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프리랜서 김성태서천 주꾸미 축제를 앞둔 15일 오후 충남 서천 수산물특화시장에서 상인이 주꾸미 등 수산물을 선보이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대중교통으로 서천을 찾은 여행객이 가장 먼저 주꾸미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서천읍의 서천특화시장이다. 서천 최대 재래시장으로 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2, 7일 오일장이 서던 자리에 2004년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상인에게서 충청도 특유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노들강변수산’ 노순희(70) 사장은 먼저 나서서 좋은 주꾸미 고르는 법을 아낌없이 전수해줬다.
 “무조건 큰 게 좋은 줄 알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가장 맛있지. 주꾸미도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꿔. 색이 연하면 신선도가 떨어진 거야.”
 어물전 갯것을 구경하던 찰나, 상인들이 “우리 시장의 명물”이라며 노란 바구니를 가리켰다. 1층 수산 시장 물건을 2층 식당가로 배달할 때 쓰는 물건이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2층에서 바구니에 달린 밧줄을 끌어올린다. 
주꾸미 머리에는 하얀 알과 먹물이 들어 있다. 3월 말께 쌀밥 같은 알이 머리 한 가득 찬다.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프리랜서 김성태

주꾸미 머리에는 하얀 알과 먹물이 들어 있다. 3월 말께 쌀밥 같은 알이 머리 한 가득 찬다.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천특화시장 2층 식당가에서는 자릿세(1인 5000원)를 내면 시장에서 산 해산물을 조리해준다. 서천군청의 추천으로 시장 식당 ‘엄지네(041-952-0212)’에 들어갔다. 엄지네는 주꾸미와 냉이를 함께 먹는 ‘서천식’ 샤부샤부를 안착시킨 집이다. 샤부샤부에는 흔히 미나리나 쪽파를 넣는다. 이종숙(53) 사장은 “냉이가 나올 때 주꾸미가 올라오고, 냉이꽃이 필 때 주꾸미가 산란한다”며 두 식재료의 궁합이 찰떡 같다고 했다.
 국물에 주꾸미를 잘라 넣을 때도 요령이 있다. 살짝 데친 주꾸미 목 부분을 자른 뒤 다리는 2개씩 나눈다. 다리는 오래 익히면 질겨지기 쉬워 익힌 지 30초 만에 건져 먹어야 한다. 냉이 향이 감도는 주꾸미의 야들야들한 살을 씹으니 입 안에 봄이 깃들었다. 알은 충분히 익혀야 해서 보통 머리를 마지막에 맛본다. 먹물은 감칠맛이 나고 알은 꼭 찰기 없는 쌀 같았다. 생애 가장 농후한 맛의 디저트였다. 16일 서천특화시장 주꾸미 소매가는 1㎏에 3만3000원이었다. 1㎏면 어른 4명이 충분히 먹는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라면 사리는 건너뛰면 안 된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이다. 샤부샤부 조리비(8000원)를 따로 받는다.
봄철 없는 입맛도 살려주는 주꾸미 볶음. 프리랜서 김성태

봄철 없는 입맛도 살려주는 주꾸미 볶음. 프리랜서 김성태

 서천 여행은 주꾸미를 회로 먹을 수 있어서 더 즐겁다. 주꾸미로 주꾸미탕탕을 만드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서천 여행은 주꾸미를 회로 먹을 수 있어서 더 즐겁다. 주꾸미로 주꾸미탕탕을 만드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서천 주꾸미 조업이 이뤄지는 마량포구와 홍원항 일대에도 맛집이 즐비하다. 마량포구의 ‘칠구지횟집’(042-951-5630)은 봄·가을 주꾸미 철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이다. 마량포구 인근의 한국전력공사 서천지사 사원에게 인기가 높아 ‘한전 식당’으로 통한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주꾸미철판볶음(주꾸미 1㎏ 기준 6만원). 사실 서천의 주꾸미 음식점은 죄다 볶음을 내놓지만, 양념이 강하다. 
 칠구지횟집의 주꾸미 볶음은 양념 색이 흐리멍덩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한 것이 주꾸미가 물리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김경수(60) 사장은 “과일과 버섯 등 20가지 재료를 섞어 5년간 숙성한 양념장을 쓰는 게 맛의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홍원항 근처 맛집으로는 ‘서해바다로’(041-952-3553)를 추천한다. 아들 이원희(37)씨가 잡아 오는 주꾸미를 아버지 이상원(62)씨가 주꾸미 회로 낸다. 낙지처럼 잘게 ‘조사서(다져서)’ 이른바 주꾸미탕탕(5만원)을 만든다. 낙지보다 부드럽고 살이 차지다.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천 마량포구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주꾸미 낚시를 체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천 마량포구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주꾸미 낚시를 체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서천군청까지 차로 3시간 거리다. 주꾸미 시즌에 맞춰 서천 마량포구 일대에서 4월 1일까지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tour.seocheon.go.kr)가 열린다. 산지에서 주꾸미를 맛보고 살 수 있다. 평소에는 위판가에 따라 주꾸미 소매가가 매일 달라진다. 축제 기간에는 주꾸미 가격이 조업에 상관없이 정가(1㎏ 5만원)로 거래된다. 마량포구·홍원항·서천특화시장 모두 가격이 같다. 
 
 서천=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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