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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술집’ 소문에도 20년간 단골 끊이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2018.03.21 00:01

어디로 갈까’ 식사 때마다 고민이라면 소문난 미식가들이 꼽아주는 식당은 어떠세요. 가심비( 價心比)를 고려해 선정한 내 마음 속 최고의 맛집 ‘심(心)식당’입니다. 이번주는 광명동굴 와인연구소 최정욱 소장이 추천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와라비타로’입니다. 

와라비타로의 대표 메뉴인 우동스키.

와라비타로의 대표 메뉴인 우동스키.

 
와인 소믈리에가 이자카야를 추천한 이유  
광명동굴 와인연구소 최정욱 소장. [사진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 최정욱 소장. [사진 최정욱]

와인연구소를 이끄는 최 소장의 추천은 의외였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의 특성상 와인 바나 프렌치 레스토랑을 추천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이자카야였다. 최 소장은 “18년째 단골인 가게”라며 “셰프들이 버거킹이나 맥도날드를 소울푸드 식당으로 꼽듯 내겐 와라비가 그런 존재”라고 설명했다. 

[송정의 심식당] 와인소믈리에 최정욱의 '와라비'
2대가 나란히 운영하는 일본식 이자카야

첫인상은 유쾌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택가 골목까지 겨우 찾아갔는데 주인은 불친절하고, 사람은 많아 주문도 밀리고. “하지만 마구로(참치) 육회, 고등어 초절임, 시샤모 구이, 오징어 통구이 등 메뉴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여느 술집과는 다른 특유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루한 일상 벗어나기 위해 열게 된 이자카야  
와라비타로는 잠실새내역(구 신천역)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새마을시장 방향으로 75m 떨어진 곳에 사위가 운영하는 ‘와라비’가 있다. 현재 와라비타로가 있는 건물이 원래 와라비가 있던 자리다. 8년 전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동안 새마을시장 쪽으로 옮겼다. 1년 후 건물이 완공되고 2층에 다시 가게를 열면서 일본어 ‘장남·처음’을 뜻하는 타로를 붙여 와라비타로라 이름짓고 와라비보다 약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 와라비타로는 이씨와 딸 최라미씨가, 와라비는 사위가 책임지고 있는데 가족이 함께하는 만큼 식재료를 함께 쓰고 바쁠 땐 서로 오가며 돕고 있다.  
와라비가 있던 자리 2층에 새롭게 문을 연 와라비타로. 오랜 단골들이 주로 찾는다.

와라비가 있던 자리 2층에 새롭게 문을 연 와라비타로. 오랜 단골들이 주로 찾는다.

10여 년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준호 사장이 남편과 함께 이자카야를 시작한 건 95년부터다. 귀국 직후엔 학생·직장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배울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일상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뭐 재밌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이씨 부부가 마침 떠올린 게 이자카야였다. 일본에 머물 때 남편과 매일 저녁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던 곳. 부부는 일본 이자카야만의 편안한 음주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부부는 결심 후 둘만의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오랫동안 가게 지키기. 이씨는 “‘돌 위에서도 3년’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는데 찬 돌위에라도 3년을 앉아 있으면 따뜻해진다는 뜻으로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라며 “한국에 돌아온 후 마음에 드는 술집을 발견해도 몇 년 못가 문닫는 걸 보고 우리는 오래 하자 다짐했다”고 말했다.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러운 두부튀김.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러운 두부튀김.

 
IMF 때도 승승장구
둘째 합리적인 가격이다. 와라비에선 1만원이면 술과 안주를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처음 문을 열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 음식은 비싸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누구나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진짜 이자카야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픈 당시 소주 2500원, 안주는 5000원으로 가격을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요즘도 와라비에선 소주 3000원, 안주는 7000원짜리가 대부분이다. 대신 안주는 한 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술집에 비해 양이 적다. 이씨는 “한국 술집은 대부분 가격이 비싼 만큼 안주 양이 많다. 우린 혼자서도 좋아하는 메뉴를 시킬 수 있도록 1인분씩 조금만 내고 있다”고 했다. 
 깍둑 썬 참치에 채썬 마와 달걀노른자, 김을 섞어 먹는 야마가케.

깍둑 썬 참치에 채썬 마와 달걀노른자, 김을 섞어 먹는 야마가케.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번째 원칙은 ‘주인·고객·직원이 동등한 가게’라는 점이다. 부부는 “손님은 왕”이라며 자신들과 직원을 막 대하는 손님이 오면 가차없이 돌려보냈다. 툭 하면 만취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오픈 하고 한동안 35세 이상은 출입을 금했다.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술먹고 취해 다른 손님에게 시비를 거는 등 피해를 줬다. 그게 무서워서 나이를 제한했다. 이자카야는 취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맛있는 요리와 술을 즐기는 곳”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출입제한에 물은 직접 갖다 먹어야 하고, 카드 결제도 안되고(※지금은 카드 결제 가능). “이상한 가게”라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부부가 개발한 샤브 우동·마구로 육회 등 인기 메뉴와 일본의 작은 골목 이자카야를 옮겨온 듯한 특유의 분위기를 찾아오는 단골은 꾸준히 늘어 금융위기(IMF) 어려움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20~30대였던 단골들 중년되서도 꾸준히 찾아  
2층에 자리한 와라비타로 입구.

2층에 자리한 와라비타로 입구.

20년 넘게 단골 손님이 꾸준히 몰리는 장수 비결은 역시 음식이다. 깍둑 썬 참치에 채썬 마와 달걀노른자, 김을 섞어 먹는 야마가케,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두부튀김, 우동과 어묵이 푸짐하게 들어있는 우동스키 등이 대표 메뉴다. 닭꼬치·오징어·메로 등 구이도 인기다. 일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릇이나 소품은 가족이 함께 종종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사온다. 

문을 연 지 20년이 지나면서 개점 당시 찾아오던 20~30대 젊은이들은 어느덧 40~50대 중년이 됐다. 그 사이 주인과 손님은 함께 나이들었고 이젠 가족같은 사이가 됐다. 이씨가 가게를 비우는 날이면 손님들이 딸 최씨를 도와 이것 저것 알아서 챙겨준다. 최씨는 “가게가 불친절하다는 말도 많이 듣지만 이자카야 분위기와 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친절한 가게”라며 웃었다. 와바리·와라비타로는 오후 6시에 문을 연다. 안주는 와라비 7000원선, 와라비타로 1만~2만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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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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