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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설계비 아끼려다 공사비 바가지 쓴다

중앙일보 2018.03.20 01:02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 이야기(9)
황토로 지은 펜션 단지(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황토로 지은 펜션 단지(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제가 설계도 하고 제 손으로 지은 집입니다.”
 
언젠가 리조트 답사를 위해 전국 여행을 하다가 황토로 지은 펜션 단지에 들렀다가 들었던 말이다. 펜션 단지의 주인인 그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건축설계도 자기가 하고 집도 자기가 다 지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외관을 한참 설명하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내부 구조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황토벽 위에 목재 틀로 지붕을 만들고 지붕 마감재를 얹었다. 황토벽이라 내부도 별다른 마감이 필요 없었다. 방안에 작은 싱크대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다. 집으로서 갖출 조건을 다 갖추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그는 설계과정과 힘들게 공사했던 무용담을 장시간 들려주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편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대답은 짐작대로였다. “설계비를 아끼고 공사비를 적게 들이기 위해서….”

 
 
공사비 분쟁은 부실한 설계 때문 
원하는 규모와 디자인을 상세하게 표현해 놓은 설계도가 있어야 시공과정에서 분쟁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사진 freepik]

원하는 규모와 디자인을 상세하게 표현해 놓은 설계도가 있어야 시공과정에서 분쟁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사진 freepik]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규모와 디자인을 상세하게 표현해 놓은 설계도가 있어야 시공자가 그 도면에 준해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도면이 부실하면 시공 과정에서 분쟁이 생긴다.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대부분은 공사비와 관련한 문제인데 공사비 분쟁은 그 원인을 따져보면 부실한 설계도에서 기인한다. 
 
설계도에 그 구조와 재료, 마감 등을 상세히 표현해 놓지 않으면 시공자 마음대로 공사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약식 도면을 가지고 상세한 견적서를 만들 수 없다. 결과적으로 계약서에 붙는 견적서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공사 중 발생하는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계약된 공사비 외에 추가 공사비를 시공자가 요구하는 경우다. 부실한 설계도를 가지고 대충 견적서를 만들다 보니 누락된 항목이 많은 것이다. 자재의 누락으로 발생한 이러한 추가공사비 분쟁은 공사 기간도 늘어지게 한다.
 
이렇게 당초 시공자 실수로 공사비 산정을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공사비를 적게 산정해 건축주를 속이는 시공자도 있다. 일을 따기 위해 다른 시공자보다 적은 공사비를 제시한 후 일단 계약하고 나서 공사 진행 중에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는 수법이다.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 건축주는 어쩔 수 없이 추가로 공사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다. 법으로 해결하자니 복잡해지고 시공자를 바꾸자니 더 복잡해진다. 악덕 시공자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공사 중에 발생하는 이러한 시공자와의 분쟁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충실한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건축주가 설계의 가치를 잘 모른다. 심지어 설계도는 시공자가 무료로 제공하는 줄 아는 건축주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축주는 설계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려 한다. ‘벽돌 쌓는 벽돌공은 인건비를 받지만, 벽돌쌓기 도면을 그린 건축가는 인건비를 못 받는다’는 말은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인 분야에 만연한 현실이다.
 
 
악덕 시공자, 엉성한 설계도면 원해 
이런 시장 구조에서 건축설계사무소는 인허가 요건을 갖춘 최소한의 도면만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공사부실로 이어지고 분쟁의 소지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악덕 시공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공사 중에 시공자와 큰 분쟁 없이 넘어간다고 해도 입주 후에 발생하는 하자와 관련한 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마감과 관련한 하자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구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심각하다. 그 경우는 설계도면을 검증해야 하고 감리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는지, 또는 부실시공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 법적 요건만 갖춘 최소한의 도면을 가지고는 책임소재를 찾아내기 어렵다. 사건이 아주 복잡해지는 것이다.
 
 
한 입주예정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부실시공의 모습. 거실의 벽체 위아래 두께가 다르다. [출처=딴지일보 게시판]

한 입주예정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부실시공의 모습. 거실의 벽체 위아래 두께가 다르다. [출처=딴지일보 게시판]

 
그러면 비용을 절약하면서 좋은 집을 짓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신뢰할 만한 건축사에게 적절한 설계 대가를 지불해 좋은 디자인과 상세한 도면을 만드는 것이다. 건축 설계비는 공사비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다. 그러나 설계도가 전체 공사와 추후 하자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위 펜션의 경우처럼 설계비와 공사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내 손으로 설계, 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주 후 발생할 하자까지 고려하면 결코 비용을 절약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의 문제다. 기능에 별문제가 없다고 해도 집 디자인이 수준 이하라면 비용을 줄인 변명으로 상쇄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고 좋은 디자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수필가 badaspace@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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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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