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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프랑스 헌법 전문에 대혁명은 없고 인권선언은 있다

중앙일보 2018.03.19 02:30 종합 8면 지면보기
개헌 성공의 조건 <하> 
프랑스 헌법 전문(前文)에는 프랑스 대혁명이란 말이 없다. 다만 프랑스 대혁명 때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이 언급될 뿐이다. 이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보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인권선언’인데 여기에 프랑스 대혁명의 의미가 다 들어 있다”고 말했다. 헌법 전문은 역사적 보편성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인 프랑스 혁명이 아니라 범인류적 가치인 ‘인권선언’이 들어갔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정치 수준 바로미터, 헌법 전문
국가가 추구할 보편적 가치 언급
역사적 사건 담는 나라는 드물어
선진국들, 전문은 거의 손 안 대

한국은 정권 따라 5·16 등 포함
역대 아홉 번 개헌 중 네 차례 고쳐
전문가 “역사 평가 끝난 뒤 반영을”

이처럼 헌법 전문에는 헌법 제정의 목적과 지향하는 가치, 역사성과 정통성이 담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헌법 전문을 “헌법의 헌법으로 본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담긴 헌법의 얼굴”(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라고 설명한다.
 
국회 도서관이 2013년 펴낸 세계의 헌법에 수록된 35개국 중 헌법 전문이 있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16개 국가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재한 국가는 이라크·중국·포르투갈·프랑스 등이다. 그나마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대신 인권선언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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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헌법 전문은 대부분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명확히 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 헌법은 “국민복지를 증진하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자유와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독일 헌법은 “독일 국민은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통일 유럽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고 전문에 적었다.
 
이처럼 보편적 가치만 담다 보니 미국과 독일의 경우 헌법 전문의 변화가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 1949년 제정된 후 40여 차례의 개정이 있었지만 전문이 개정된 건 1990년 통일 당시 ‘통일을 성취할 사명’에서 ‘통일을 완성했다’고 고칠 때뿐이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면 한국 헌법 전문은 부침이 심하다. 제헌 헌법 이래 아홉 차례 동안 꾸준히 포함된 건 3·1운동뿐이다. 박정희 정권 때 있었던 5차 개헌(1962년), 6차 개헌(69년), 7차 개헌(72년)에는 5·16 군사쿠데타가 5·16 혁명으로 전문에 담기기도 했다.
 
이번 개헌 작업에서도 어떤 사건을 반영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개헌안에는 현행 헌법 전문에 있는 3·1 운동과 4·19 민주이념에 이어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을 추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개헌안엔 여기에 ‘촛불시민혁명’도 추가했다. 반면 개헌특위 자문위원 안에는 6·10 항쟁만 새로 추가했다.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은 소수의견으로 다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전문에 포함되는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적 평가들이 끝난 다음에 포함시켜야지 너무 서둘러 포함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14년 국회 헌법자문위원회는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대신 ‘개인의 자율과 창의’ ‘사회적 조화’ ‘복지’ ‘평화통일’ 등을 적었다. 당시 자문위는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 등을 적시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지향점과 시대적 가치를 명확히 하여 이념적 차이를 넘어서는 통합의 헌법을 지향한다”고 명시했다.
 
강경선 방송통신대 헌법학 교수는 “헌법 전문에 특정 진영에서 반대하는 논란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넣으면 오히려 헌법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차라리 왜 헌법 전문에 3·1 운동이 담겼는지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헌법 전문에 담긴 정신과 의미를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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