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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MB를 구속한다?

중앙일보 2018.03.16 01:34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혁명성’에 집착한다. 문 대통령은 촛불시위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시민혁명으로 승화시켰다. “3·1운동 정신이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촛불혁명으로 계승됐다”는 그의 3·1절 기념사는 촛불의 정통성에 누구도 도전을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정의가 짓밟히고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이 확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 민중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때,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듯 국가를 엄습한다.(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시각은 국정 농단에 맞서 “이게 나라냐”며 들고 일어난 촛불시위가 국민 저항의 혁명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인식과 맞닿는다.
 

촛불혁명 앞세운 MB 구속 목소리
수사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 발견
방어권 보장이 사법정의에 합당
감방 가두고 적폐 청산 외쳐봐야
권력이 주장하는 정의에 불과해

혁명은 피아(彼我)와 선악(善惡)을 구별한다. 촛불이 혁명의 주체라면 박근혜·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반(反)혁명의 상징이다. 반동세력이며 응징과 단죄할 악으로 규정된다. 혁명세력은 낡고 부패한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일소해야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사회정의를 앞세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가반역죄로 단두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반대편에 선 이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게 혁명의 속성이다.
 
첫 번째 청산 대상이던 박근혜가 창살 밖 자유의 공기를 다시 맡을지는 미지수다. 그에겐 1심에서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현재 66세, 대법원에서 구형량이 유지되면 96세까지 옥살이를 못 벗어난다. 나는 지금이라도 박근혜를 구속에서 풀어 주고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본다. 그는 지난해 10월 구속이 연장되자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이라며 재판을 거부한다. 그 탓에 박근혜가 774억원을 모금해 재단을 세우려 한 이유, 최순실의 국정 개입 정도, 박근혜에게 흘러갔다는 돈의 행방에 대해 그의 입에서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진실은 박근혜의 가슴속에 묻혀 있다. 그를 자유의 몸으로 재판에 임하게 했더라면 그의 육성을 통해 농단의 실상에 접근할 수도 있었으리라.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구속은 신체 자유를 박탈하고 방어권을 차단한다. 감방에 갇힌 사람과 검찰의 싸움에서 누가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수사 단계에서 구속되면 방어권이 박탈된다. 검찰과 대등한 재판이 되지 않는다. 무기 대등의 원칙 위반이다”(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재판’이 1심, 2심, 대법원까지 이어진다면 사법사(司法史)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두 번째 표적인 MB에겐 110억원대 뇌물 등 20개 혐의가 씌어 있다. 구속의 목소리가 높다. 촛불혁명에 역행하는 세력이기에, 많은 이가 미워하기에, 유죄가 될 게 뻔하기에 구속하라는 논리다. 감정이 법을 압도한다. 수의에 수갑 찬 MB와 박근혜가 조우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일부는 그게 촛불혁명의 정신이요, 사법정의라고 믿는다.
 
MB의 불구속은 그래서 중요하다. 헌법상 무죄 추정 원칙,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없음, 전직 대통령 예우, 불행한 말로와 몰락에 대한 동정론 따위를 들먹여 불구속 당위성을 펴려는 게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동시 구속이란 불행한 운명을 걱정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MB에게 법정에서 소명할 기회를 주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자는 뜻이다.
 
수사와 재판의 최종 목적지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만 숨어 있던 진실을 찾아내는 긴 여정이다. 우리는 실체적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검찰의 주장, 주변인의 진술, 정황과 추정이 춤추는 속에 법률에 없는 무능죄와 괘씸죄가 구속론에 힘을 실어 준다.
 
MB의 의혹들이 다 사실로 드러날 수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빼 쓰고, 뇌물을 받고, 다스의 실소유주로서 횡령과 탈세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맞다면 심각한 국기문란 범죄다. 그러나 다툼의 소지가 있고, 진실이 모호하다면 방어권을 보장하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펴도록 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고, 그의 파렴치한 행태가 규명된 뒤 엄벌해도 절대 늦지 않다. 전직 대통령의 범죄를 다루는 재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에 그 실체적 진실을 기록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그게 진짜 사법정의다.
 
촛불혁명의 정당성은 절차적 정의로 구현된다. 지금처럼 감방에 가둬 둔 채 일방적으로 적폐를 파헤쳤다고 외쳐 봐야 권력의 정의에 불과하다. 지금이 촛불의 이름으로 수사·재판마저 혁명적으로 몰아갈 때인가.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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