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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대신 스틱... "우리는 썰매를 탄다"

중앙일보 2018.03.15 11:42
파죽지세 파라 아이스하키(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평창에서 패럴림픽 첫 메달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국가대표 ③ 아이스하키

‘우리는 썰매를 탄다(이하 우썰탄)'는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2년 6개월 작업 끝에 지난 2014년 완성됐지만, 개봉을 못 했습니다. 장애인ㆍ비인기 종목ㆍ다큐멘터리 등 흥행이 힘든 요소를 ‘두루’ 갖춘 탓에, 상영관을 잡을 수 없었죠. 다행히 평창 패럴림픽을 계기로 대회 개막 이틀 전인 3월 7일, 무려 4년 만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김경만(48) 감독과 영화사의 협조를 받아,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땀과 눈물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합니다. 김 감독과 대표팀 주장 한민수(47) 선수 인터뷰를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다큐 주인공이 된 국가대표팀

“의사 선생님이 다리가 난다고 그랬어요. 자랄 거라고. 처음엔 믿었어요.”

11일 한국-체코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정승환 선수(오른쪽)와 주장 한민수 선수. 장진영 기자

11일 한국-체코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정승환 선수(오른쪽)와 주장 한민수 선수. 장진영 기자

2018 평창 패럴림픽 홍보대사인 정승환(32) 선수가 영화 속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말한다. 다섯 살때 사고로 다리를 잃은 그의 별명은 ‘빙판 위의 메시’, '로켓맨'. 만 18세가 되던 2004년, 빙상 스포츠 중 가장 과격하다는 아이스하키에 뛰어들었다.

 

썰매를 달릴 때만큼은,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도 힘들지만 파라 아이스하키는 더 힘들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달리, 팔로 스케이팅과 드리블을 모두 해야 한다. 2개의 하키 스틱에는 썰매를 밀기 위한 톱니 모양의 픽(Pick)이 달려 있다. 픽으로 얼음을 찍고 전진하다 반대쪽 블레이드로 퍽(Puck)을 친다.
 
팔을 많이 쓰는 탓에 부상 위험도 높다. 정 선수도 손가락이 두 번이나 부러졌다. 2012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월드챔피언십 A-pool 출전을 앞두고도 그랬다. 정 선수는 경기를 위해 엇갈린 뼛조각을 맞추기 위해 철심을 박는 수술을 뒤로 미뤄뒀다. 병원에서 손가락 고정장치를 씌워줬지만, 경기를 위해 그마저 벗어버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강팀 노르웨이를 4대 1로 눌렀다. 하지만 이어진 캐나다와의 경기에서는 패했다. 격한 충돌 와중에 정 선수의 썰매에 금이 갔다.
 
그는 스틱 대신 전동 드릴을 손에 들었다. 
 
아이스하키는 비인기 종목이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더 말할 게 없다.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는 불모지를 개척해왔다. 경력 19년 차, 국가대표팀 주장 한민수(47) 선수는 그 고난의 역사를 기억한다.
 

“대관이 힘드니까 새벽 세 시에 연습한 적도 있고, 막… 떠돌이처럼 돌았죠. 강릉 합숙 가면 라커룸이 있어요. 돈이 없으니까, 여관비가 없으니까 라커룸에서 바닥 깔고 자고 그랬었죠.”

 
선수들은 운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썰매부터 보호장구까지 장비 한 세트를 갖추는 데만 얼추 200만 원이 든다. 여기에 퍽이나 스틱 등 소모품 비용에 빙상 대관료, 이동을 위한 차량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국제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외국에 나갈 때도 자비를 털었다. 그나마 형편이 나아진 건 2006년부터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뛰어들면서 강원도청이 국내 첫 실업팀을 창단한 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사진=태흥영화주식회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사진=태흥영화주식회사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여전하다. 영화는 대표팀이 2012년 노르웨이 월드챔피언십에서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선수들이 우리측 객석을 향해 절을 하지만, 텅 빈 그곳엔 태극기와 플래카드 한장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4년 전, 2014 소치 패럴림픽.
 
조별리그 첫 경기 상대는 개최국 러시아. 한국은 슛 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러시아를 3-2로 물리쳤다. 하지만 미국ㆍ이탈리아에 연패해 메달을 놓쳤다. 정 선수는 “첫 경기를 이기고 우승할 줄 알았다. 준결승행이 좌절된 뒤 라커룸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이후 오직 하나, 평창만 생각했다. 한민수ㆍ유만균 등 소치 대회 이후 은퇴를 고려했던 베테랑들이 메달 도전을 위해 다시 한번 썰매에 올랐다. 패럴림픽을 앞두고 치른 ‘모의고사’에서 대표팀은 만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2017년 4월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3위를 거둬 개최국 자동출전권 없이 자력으로 평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해 1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4개국 친선대회에선 5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8개국이 출전하는 패럴림픽에선 조별리그 1, 2위가 준결승에 진출한다. 한국은 일본(10일)·체코(11일)·미국(13일)과 함께 B조에 배정됐다. 정 선수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내심 결승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만 감독 “패럴림픽 성공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보통은 협조를 구하고 어떻게 찍을지 정하는데요. 선수들에게는 한번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100% 리얼입니다. 그 진심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김경만 감독. [사진=연합뉴스]

김경만 감독. [사진=연합뉴스]

“선수들이 돈을 내고 국제대회에 나갔다는 말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다음엔...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김경만(48) 감독은 1주일이면 다큐 한편 뚝딱 만들어내던 방송 PD였다. 하지만 이번엔 직접 카메라를 메고 3년을 따라다녔다.
 2월 19일 '우썰탄'시시회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눈물을 훔치는 김정숙 여사. 영화에 출연한 정승환(왼쪽), 한민수(오른쪽)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팀 17명이 모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2월 19일 '우썰탄'시시회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눈물을 훔치는 김정숙 여사. 영화에 출연한 정승환(왼쪽), 한민수(오른쪽)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팀 17명이 모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우썰탄’은 러닝타임이 짧다. 딱 70분이다. 워낙 영화관 잡기가 힘들다 보니, 새벽이건 한밤중이건 막간을 이용해서라도 한 번쯤 영화를 걸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김 감독이 분량을 최대한 줄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평창 패럴림픽이 장애인들을 빙상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패럴림픽이 올림픽 개최지에서 나란히 열리게 된 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였다. 당시 '장애자 올림픽'을 보고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장애를 입으면 처음엔 집 밖에 안 나가요. (‘우썰탄’에 나오는) 선수들도 자살 시도를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이라고 보면 돼요.”
 
하지만 운동을 하면 바뀐다. ‘우썰탄’의 대표선수들이 산증인이다. 그들은 “파라 아이스하키를 하려면 차라리 다리가 없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가 너무 적다. 등록 선수 110명, 실제로 활동하는 선수는 60여명, 클럽팀 8개에 실업팀은 1개 뿐. 실업팀이 하나라는 건 운동에 전념할 선수가 매우 부족하다는 뜻이다.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는 2016~17년 제2 실업팀 창단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 선뜻 나서는 지자체도 없었고, 후원사를 구하기도 힘들어서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 등록 선수는 총 3045명(대한아이스하키협회, 2017년 12월 15일 기준). 대다수가 초등학교(2166명)와 중학교(461) 선수다. 반면 파라 아이스하키는 주니어팀을 찾기 어렵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혼성 경기라 여자 선수도 함께 뛸 수 있지만, 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김 감독은 그래서 영화의 성공보다 패럴림픽의 성공을 더 간절히 바랐다.
 
“일본이 ‘더 퍼스트 패럴림픽’을 준비한대요. 이미 많은 나라가 패럴림픽을 개최했는데도 말이죠. 우리나라 패럴림픽이 성공하면 일본이 감히 ‘퍼스트’를 못 붙일 겁니다. 올림픽을 잘 개최하면 좋은 나라지만, 패럴림픽을 잘 개최하면 존경받는 나라가 됩니다.”
 
국가대표
살아있는 전설, 주장 한민수 선수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어요. 처음 실업팀도 없어 돈도 못 버는 나를 이해해준 아내는 천사예요. 이번 패럴림픽이 마지막 대회인데, 가족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영광스럽게 은퇴하고 싶어요.”

9일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를 들고 점화대에 오른 한민수 선수. [사진=뉴스1]

9일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를 들고 점화대에 오른 한민수 선수. [사진=뉴스1]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볼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한 선수는 시사회 등을 포함해 총 스무 번 정도 영화를 봤다. 동료 선수들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가슴 아파 매번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두 살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다. 서른 살 때는 무릎 골수염이 심해 아예 다리를 절단했다. 안 그러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큰딸이 겨우 생후 4개월 됐을 때였다. 막막했다. 그는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 가족은 함께 그 어려움을 결국 이겨냈다. 영화 속에 ‘꼬마 숙녀’로 등장하는 큰딸은 그새 고3이 됐다. 그는 딸이 몸이 불편한 아빠 때문에 행여 방황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딸은 아빠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번에도 대표팀 선수들이 참석한 시사회에 친구들을 데려와 주변을 흐뭇하게 했다.
 
그는 2000년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우리나라 파라 아이스하키 1세대다.
 
“일본에서 장비를 얻어와 운동을 시작했는데 첫 경기 때 0-13으로 졌어요. 다른 팀들이 대놓고 우리를 무시했죠. 한데 이제는 우리가 일본을 큰 점수 차로 이깁니다. 뿌듯하면서도 감회가 새롭죠.”
 
그는 말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 차도 크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그래서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었다”라고.
 
“실업팀이 한 팀만 더 생기고 연습 링크만 확보되면 더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습니다. 패럴림픽을 계기로 많은 분의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몰랐던 국가대표] 파라 아이스하키팀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페셜로 만나보세요.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73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중앙일보로 접속하신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기사로 넘어갑니다.국가대표팀 명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이경희·유성운·김효경 기자 dungle@joongang.co.kr 
인포그래픽=김한울 인턴
영상 제공=태흥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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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