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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CEO의 고백 "한국을 떠납니다…홀가분하게 사업하려고"

중앙일보 2018.03.15 06:00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전장 부품용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M사는 최근 베트남 닌빈성 지역에 1만8000㎡ 규모의 제2공장을 완공했다. 완공식에 베트남 정부 측 인사부터 50여 개 협력사 관계자까지 수백 명이 참석했다. 이 회사는 앞서 2013년 같은 지역에 5만9000㎡의 생산기지를 지으면서 베트남에 처음 진출했다. 당시 1500명에 달하던 현지 고용 규모는 현재 4300명까지 늘었다. 이번 제2공장이 가동되고 나면 이 수치는 훨씬 더 커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싼 인건비는 영업이익률을 높여주고,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규제 여건은 기업 경영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준다"며 "기업인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일자리 감소의 이면에는 '공장 엑소더스'가 있다. 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2년 819건에 달했던 베트남 투자신고 건수는 지난해 2362건으로 5년 새 3배나 늘었다. 역대 최고 수치다. 투자 금액도 5년 전(9억8000만 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 12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우리 기업의 해외 법인 투자 건수와 투자액수는 최근 4년 동안 매년 신기록을 수립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해외에 3411개 법인을 세웠고 437억 달러를 투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민간 투자 규모와 일자리 개수는 정비례한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국내에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배경은 중층적이다. 단순히 값싼 인건비뿐 아니라 '기업하는 환경'도 해외진출을 부추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에 평가한 한국의 규제 환경은 138개국 중 105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악하다. 미국(29), 일본(54위), 독일(18위)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지난해 기준 규제자유도도 159개국 중 75위, OECD 27개국 중에는 23위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과 교수는 "세계 6위의 수출 대국이지만 규제 그물은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정권마다 '규제 전봇대', '신발 속 돌멩이' 등 화려한 수사를 앞세워 규제 개혁을 외치지만 매번 반짝 구호에 그치고 만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서비스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기업들에 대단히 중요한 경영여건의 변화인데 몇 년째 국회에서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기업들에게 '정권이 바뀌어도 규제는 그대로'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한국에서 투자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공을 들이다 의료법에 막힌 디지털 헬스케어, 16년을 끌다 결국 무산된 투자개방형 병원, 현대차가 50억원을 투자했다가 끝내 포기한 카풀앱 서비스, 세계 최초로 모바일결제를 개발하고도 사업화하지 못했던 사례 등 규제가 신사업을 막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경직된 노동환경과 강성 노조도 일자리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금호타이어 정상화 건만해도 1만7000명의 고용이 달려있으나 노조는 14일 "해외매각 반대, 체불임금 지급"을 주장하면서 총파업에 들어갔다. 해외 매각이 안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이 회사는 청산가치가 존속가치 보다 높아 사업폐쇄의 외길 수순을 밟게 된다.
 
세제 혜택처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도 갈수록 위축되면서 기업을 움츠러들게 한다. 다국적 회계컨설팅회사 KPMG에 따르면 2008년 이후 OECD 회원국의 법인세율은 평균 5% 낮아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해외 수익을 국내로 들여오도록 35%인 세율을 일시적으로 15.5%로 낮추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여권을 중심으로 24.2%인 법인세율을 인상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25%로 올릴 경우 대상기업(과표 3000억원) 56개사가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4조원에 달한다. 50억원짜리 벤처기업 80개가량을 인수할 기회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밖에 연구개발(R&D)에 들어가는 돈의 1~3%를 세액 공제해주던 정책을 0~2%로 축소한 것도 기업에는 5500억원의 비용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은 하나의 규제를 도입하면 두 개의 규제를 없애는 '투 포 원(Two for One)' 규정을 도입했고 영국은 규제가 비용을 증가시킬 경우 증가비용의 두배에 달하는 기존 규제를 개선한다는 '원인, 투 아웃(One-In, Two-Out)' 제도를 도입했다"며 "이들 정책에 담겨있는 '기업 우선' 정신을 배우지 않으면 일자리 늘리기는 헛구호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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