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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서 ‘정치보복’ 말 않고 검찰엔 “편견 없는 수사를”

중앙일보 2018.03.15 01:34 종합 3면 지면보기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한 뒤 강진구 중앙지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한 뒤 강진구 중앙지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4일 오전 9시22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탑승한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섰다. 논현동 사저에서부터 약 4㎞ 거리, 시간상으로도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량 문을 열기 전 경호원 한 명이 수초 동안 주변을 살폈고 이 전 대통령은 그제야 차량에서 내렸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포토라인에 섰는데 국민들께 한말씀해 달라”는 요청에 그는 A4 용지에 미리 작성한 성명서를 남색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 읽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메모 중 ‘공정하게 이뤄져야’ 안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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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준비한 원고 가운데 ‘이번 일이 모든 정치적 상황을 떠나 공정하게 이뤄지길 기대합니다’라는 문장은 아예 읽지 않았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이다. ‘정치 보복’과 같은 단어도 없었다. 그 대신 ‘엄중한’, ‘말을 아낀다’는 표현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의 한 참모는 “성명서 내용은 출두 직전까지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다”며 “원래 담겼던 내용에 비해 수위 조절을 하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후 한동훈 3차장 검사와의 10여 분간 티타임에서 이 전 대통령은 “편견 없이 수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전 10시 무렵 이 전 대통령은 특수부 1001호 조사실로 들어갔다. 1년 전 박근혜(66·구속) 전 대통령이 조사받은 곳이다. 검찰 수사팀은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다스 실소유주 의혹’부터 파고들었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2011년 다스의 BBK 투자금(140억원) 회수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여부, 다스 경영진의 300억원대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 등은 자연스레 규명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의 다스 법률 비용(60억원) 대납 의혹 역시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으로 인정돼야 직접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검찰, 다스 실소유 의혹부터 파고들어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이 직접 이 전 대통령 앞에서 올 1월 영포빌딩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다스 관련 각종 보고서, 청와대 문건 등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검찰의 추궁에 이 전 대통령은 기존 입장대로 “다스와 도곡동 땅은 내 차명재산이 아니다. 다스의 경영에도 개입하지 않았다”며 전면 부인했다. 강훈 변호사 역시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 반박 논리를 폈다. 신 부장은 “대통령님”, 이 전 대통령은 “검사님”으로 호칭했지만 양측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이날 조사 중간중간 이 전 대통령은 “정말 이런 내용을 진술로 받았느냐, 그럴 리가 없다”며 검찰 수사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팀이 “대통령님, 저희가 측근들로부터 진술을 받았는데 이게 사실인지요”라는 식으로 질문한 데 따른 답변이다.
 

측근들 진술 전해 듣고 “그럴 리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실 중앙지검 1001호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실 중앙지검 1001호

이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문을 받는 사이 먼저 기소된 김백준(79·구속)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20년 넘게 ‘집사’ 역할을 했던 김 전 기획관의 법정과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실 사이의 거리는 약 300m에 지나지 않았다. 재판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직접 쓴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김 전 기획관은 “제 죄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여생 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8년과 2010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각각 2억원씩 총 4억원의 특수활동비(대북공작금)를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외부 식당에서 마련해 온 설렁탕을 먹었다. 저녁에는 곰탕을 들었다. 1년 전 박 전 대통령은 김밥·샌드위치·유부초밥이 든 도시락을 사저에서 미리 준비해 왔다.
 

박근혜도 조사받던 방서 곰탕 식사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 지시 등 뇌물 혐의에 대해선 이날 오후 5시20분쯤 조사가 시작됐다. 송경호 특수2부장의 추궁에 이 전 대통령은 “특수활동비 수수와 관련해 따로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선 “실무선에서 이뤄진 일로 내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한동훈 차장은 1001호실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조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대질신문은 오후 늦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9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조사 당시 검찰은 600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시도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거부했다.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 때 2시간 만에 끝난 정호영 특별검사팀 조사와는 딴판이었다. 10년이 지나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다시 검찰 조사를 받는 이 전 대통령에게 14일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
 
김영민·손국희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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