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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가면 더 해” 대학내 인권센터서 미투 2차 피해

중앙일보 2018.03.15 00:39 종합 16면 지면보기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대의 한 교내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대학생 A씨(21)는 지난해 9월 MT 장소를 알아보러 동기 B씨(21)와 인천 월미도로 갔다. 두 사람은 늦은 밤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 A씨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자 B씨는 그를 모텔로 데려간 뒤 수차례 강제 추행했다. A씨의 완강한 거부로 그 이상의 행위는 막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 일을 듣게 된 지인들의 반응은 A씨의 상처를 더 키웠다. 친한 사람들조차 ‘(B씨가 쓴 방법을) 나도 써먹어야겠다’ ‘유치한 걸로 오래 끌지 말고 화해해라’며 가볍게 대꾸했다고 한다. A씨는 교내 인권센터에도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인권센터 직원으로부터는 “남자들은 그게 잘못인지 모른다” “사회 나가면 더 하다” 등의 말을 들었다. A씨는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고 가해자 처벌을 논의하러 간 센터는 다른 2차 가해자와 다를 바 없었다”고 호소했다.
 
박지수 중앙대 성평등위원장은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A씨가 가해자, 동아리, 인권센터로부터 받은 모든 게 2차 피해였다”고 지적했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A씨가 겪은 어려움을 위로하려는 취지로 했던 말이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피해자 상담 과정에서 보다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투(#MeToo) 운동의 확산 속에서도 피해자들의 2차 피해는 속속 발견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이혼 경험과 가족의 이력 등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에 휩싸였다. 김씨는 12일 자필 편지를 통해 “(폭로)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고 있다. 신변에 대한 보복도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김현아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알리기 위해 피해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많은 걸 드러낼 각오를 해야 한다”며 “특히 잘 아는 사람마저 비난이나 편견의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큰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페이스북 ‘예술계 미투:알지만 모르는 것들’ 페이지에는 이오규(65) 용인대 국악과 명예교수가 ‘복식호흡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제자들의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폭로가 10건 가까이 올라왔다. 피해사실을 처음 제보한 황모씨는 “다른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니 ‘직접적으로 (성폭행) 당한 건 아니지?’라며 일을 축소하려 해 당시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가해자 측이 피해자에게 무고·명예훼손·모욕 등 온갖 혐의를 들어 ‘고소폭탄’을 날리기도 한다. 증거가 없거나 불완전한 경우가 많은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한 20대 여성은 가해자로부터 민·형사상 소송이 몇 건씩 동시에 들어와 부모님까지 사실을 알게 되자 가해자에게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반성문을 썼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하는 수단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법적 소송이다”고 설명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 피해자들이 받는 다양한 2차 피해들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성폭력 관련 정책들이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으로 쪼개져 있는데 흩어진 것들을 모아 성폭력 예방서부터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조치, 2차 피해 방지까지 사각지대 없이 전 과정을 지원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다른 형사사건과 달리 이상하게 성폭력 사건에서 대중은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집요하게 궁금해 한다”며 “성폭력을 개인사적 문제가 아닌, 사회 범죄로 보는 인식이 보편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김정연·정진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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