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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헵번 스타일’ 창조하고도 영원한 견습생 자처한 패션 거장

중앙일보 2018.03.14 00:22 종합 23면 지면보기
1995년 자신의 은퇴쇼에서 인사하고 있는 위베르 드 지방시. [로이터 연합뉴스]

1995년 자신의 은퇴쇼에서 인사하고 있는 위베르 드 지방시. [로이터 연합뉴스]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창조했던 패션 디자이너이자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지방시의 창립자인 위베르 드 지방시가 사망했다. 91세.
 
지방시의 오랜 동거인인 필리프 브네가 “지난 9일(현지시간) 잠을 자던 중 지방시가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지방시 측은 어제 공식 SNS를 통해 “반세기 이상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 스타일을 상징했던 설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의 죽음을 전하게 돼 슬프다”며 “그의 패션에 대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추모 글을 올렸다.
 
1927년 프랑스 보베 지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지방시는 미술대학 졸업 후, 스물네 살인 51년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쿠튀르(고급 맞춤복 전문점) 하우스를 오픈했다. 이듬해 열린 첫 번째 쇼부터 자수를 놓은 ‘베티나 블라우스’로 일약 패션계의 신동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20대 청년의 천재성이 제대로 빛나기 시작한 건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을 만나고부터다.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1961)’의 유명한 쇼윈도 장면에서 헵번이 입었던 등이 깊게 파인 블랙 새틴 드레스가 바로 그 유명한 ‘리틀 블랙 드레스’다.
 
1956년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를 피팅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56년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를 피팅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두 사람은 54년 영화 ‘사브리나’를 통해 처음 만났고 이후 ‘화니 페이스’ ‘하오의 연정’ ‘마이 페어 레이디’ ‘백만 달러의 사랑’ ‘혈선’ 등을 함께하며 93년 헵번이 별세할 때까지 40년 이상 우정을 지속했다.
 
헵번은 생전에 “지방시의 옷을 입으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바 있다. 자신만을 위한 옷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감동한 여배우와 자신이 만든 옷을 입어주겠다는 진심에 열정을 다했던 디자이너. 서로에게 힘이 돼줌으로써 함께 빛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리틀 블랙 드레스’ 외에도 50~60년대 패션 아이콘인 ‘헵번 룩’을 창조해냈다. 불필요한 장식요소는 배제하고 심플한 실루엣만으로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도시 여성의 아름다움을 살렸던 지방시. 평생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옷’을 패션 철학으로 삼았던 그였기에 헵번 외에도 윈저 공작부인, 마리아 칼라스, 그레타 가르보, 그레이스 켈리 등 수많은 스타일 아이콘들이 지방시 의상을 사랑했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개봉 후 재클린 케네디가 지방시에게 전화를 걸어 프랑스 공식 방문 일정을 위한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 유명한 재키 스타일이 시작됐음은 유명한 일화다.
 
83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지방시는 88년 프랑스 럭셔리 거대기업 LVMH에 하우스를 매각하고 7년 뒤 은퇴했다. 천재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리카르도 티시 등이 지방시 은퇴 후 그의 DNA를 전수받기 위해 브랜드를 거쳐 갔다.
 
간호섭 크리에이티브 디렉터(홍익대 교수)는 “디올, 발망,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를 잇는 우리 시대 마지막 쿠튀에르가 타계했다”며 “이로써 드레스 낭만주의는 가고 패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큰 변화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지방시의 죽음을 애도했다. 마리 끌레르 미국판 패션 디렉터 니나 그라시아 역시 트위터를 통해 “그는 스스로를 영원한 견습생이라고 불렀던 진정한 디자이너였다. 그는 아름다움을 믿었고 더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당신의 스승 발렌시아가와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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