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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사회’ 벗어나려면 … 자영업 근로시간부터 줄여야

중앙일보 2018.03.14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정부는 13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통과된 근로기준법 개정 공포안을 의결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300인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50~299인 사업장과 5~49인 사업장은 각각 2020년 1월,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또 법정공휴일 유급휴무제를 민간으로 확대했다. 휴일근로수당은 8시간 이내엔 통상임금의 50%를 더 주고, 8시간을 초과하는 휴일근로엔 통상임금의 100%를 더 지급토록 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 근로시간 국가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근로자의 건강과 생활수준 저하, 생산현장의 저효율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하지만 생산 현장의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국가 전체의 근로시간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근로시간이 긴 국가는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작다. 근로시간 통계에 자영업자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OECD 회원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그리스가 35.4%(1위), 멕시코 32.1%(2위), 한국 26.8%(5위)다. 이들 국가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을수록 근로시간도 긴 셈이다. 이상희 산업기술교육대 교수는 지난해 토론회에서 “자영업의 근로시간을 감축하지 못하면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자영업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획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도 국가 전체의 근로시간 통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의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OECD 36개 회원국 중 28위로 최하위권이다.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비중은 80%다. OECD 회원국 평균은 64.4%다. 온종일 일하는 풀타임 근로자 위주의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가졌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론 출산과 육아 등으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선호하는 여성의 일자리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OECD 국가의 남성 고용률 평균은 64.3%인데, 한국은 71.1%다. 반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49.9%에 그치고 있다. 이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노동시장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여성 파트타임 일자리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OECD가 1994년, 98년, 2000년 세 차례에 걸쳐 낸 실증 보고서는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 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OECD의 분석은 대·중소기업 격차가 심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자리의 90%를 점유한 중소기업은 낮은 처우로 인력 부족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초과근로수당이 사라져 근로자는 임금삭감 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손영하 경희대 미래융합&D사업추진단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월 소득이 평균 39만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중소기업 취업을 더 꺼리게 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인력 양극화까지 부추길 수 있다. 손 단장은 “원·하청 관계를 바로잡고, 대기업 위주의 연구개발(R&D) 지원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활력을 꾀하려면 노동시장에 대한 구조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근로시간에 비례한 임금체계를 업무성과에 기초한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 격차 해소와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감이 많을 때는 좀 더 일하고, 적을 때는 근로시간을 확 줄이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과근로를 했을 경우 이를 적립해 선진국처럼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휴가적립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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