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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이 외부 인력까지 동원해 한국 뉴스를 번역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8.03.12 17:15
며칠 전 중국 국무원(행정부) 산하 연구원의 한 간부와 저녁을 같이했다. 그는 동북아 정세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양회(정협과 전인대) 기간이라 외부인, 특히 외국인을 만나는 걸 극히 꺼렸을 것이다. 24시간 비상 대기를 해야하는 데다 행여 말실수라도하면 설화(舌禍)를 자초할 수도 있어서다. 한데 이날 그는 좀 달랐다. “비상 대기 중 나왔다”면서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차이나 패싱 현실화 우려로 전전긍긍
남북미 대화 빅뉴스에 촉각 곤두세워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고 있다 [출처: 즈성차이징]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고 있다 [출처: 즈성차이징]

역시 북핵 문제였다. 북한의 대화 모드가 정말 핵 폐기를 전제로 한 것 같냐는 게 첫 질문이었다. 특히 한국인들의 반응과 “정치권이 이를 어떻게 보느냐”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만약 그와의 저녁이 북미 정상 회담이 알려진 9일 이후였다면 첫 질문이 북미 대화의 성공 가능성을 물었을 것이다. 필자는 ‘환영하지만 반신반의’라고 답했다. 북한에 하도 속다 보니 한국인들은 북한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과 악수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출처: 봉황망]

김정은과 악수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출처: 봉황망]

역으로 그에게 “중국은 어떻게 보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도 반신반의다. 양회 때문에라도 정신이 없는데 남북 대화까지 겹쳐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요즘 한국에서 나온 관련 뉴스는 거의 다 번역해서 본다. 이전에는 주요 뉴스만 봤다.”  

 
자신이 동북아 정세 연구를 맡은지 몇 년 됐는데 요즘처럼 한국발 북핵 뉴스를 자세히 들여다본 건 처음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연구원에 한국어 번역 인력이 모자라 번역 외주까지 준다고 했다. 비단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원만 그런 게 아니고 중국에서 한반도 문제를 들여다보는 모든 부서와 연구소가 요즘 사실상 ‘비상 상태‘라는 말도 했다. 한국이 중국에 제공한 관련 정보가 너무 제한적인 데다 북한 소식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뭔가 한국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북핵 사태의 대화 국면을 보는 요즘 중국 내부 분위기가 이렇다. ‘능동’보다는 ‘수동’으로, ‘급하게’보다는 ‘느긋하게’ 북핵 문제를 접근했던 예전의 중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급하니까 안달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차이나 패싱’, 즉 중국 배제를 경계하는 게 분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남북 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출처: 중국하오저우망]

중국 외교부는 남북 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출처: 중국하오저우망]

그동안 중국은 6자 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핵 문제에 대한 ‘대주주’를 자처했다. 그러나 6자 회담이 실패하면서 중국의 역할은 ‘소주주’로 변했고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마지못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이라는 치명적 한 방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극 활용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업보(?)라 할 수 있다.  
 
차이나 패싱에 대한 중국의 우려는 외교부 대변인 발언에서도 묻어 나온다. 지난 6일 청와대가 대북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발표하자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긍정적인 방북 결과를 환영한다. 유관국들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함께 노력할 수 있길 바란다. 중국은 이를 위해 계속해서 마땅한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논평했다. 환영사 같지만 이면에는 중국 역할의 축소나 실종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지난해 시 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宋濤) 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위원장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대북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차이나 패싱) 경계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북한의 노골적인 중국 무시도 한 몫 하고 있다. 김정은이 한미 연합훈련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로 제시한 쌍잠정(雙暫停·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 훈련 잠시 중단) 원칙을 내동댕이 쳐버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한국 대표단을 만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출처: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한국 대표단을 만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출처: 백악관]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이 제안한 정상회담을 덥석 받으면서 중국의 입장은 갈수록 궁색해지게 됐다. 겉으로야 북미 대화를 촉구하고 환영한다지만 그 과정에서 남북한이 차이나패싱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북핵 주도권이 중국의 손을 떠나 남북한과 미국 쪽으로 떠나가고 있는 거다.
 
물론 중국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남북과 북미 대화 이후를 생각하며 차이나 패싱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과거 6자 회담이 큰 실효를 거두진 못했어도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한반도를 둘러싼 다자 간 대화의 틀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양시위(楊希雨) 중국 국제문제 연구원 연구원의 견해도 같다. 그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금도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서 6자 회담 만이 가장 유효한 길이라고 믿는다. 북미 대화 만으로는 비핵화, 체제 안전 보장, 핵무기 제거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는 핵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도 포괄한 것이었지만, 결국 깨지면서 서로 상대방이 속였다고 비난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북미가 과거 수십 년 동안의 대립과 불신으로 일관했는데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한 번으로 복잡한 핵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5월에 회담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출처: 중앙일보]

5월에 회담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출처: 중앙일보]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도 이런 중국의 입장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이 다소 미흡했다 해도 북한과 인접한 중국은 ‘국외자’가 되는 걸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 향후 비핵화로 가는 길에 북한의 언행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역할도 엄존한다. 최근 청와대 통일 외교 안보 특보인 문정인 교수가 워싱턴에서 가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연에서 “북미가 특정한 합의를 맺고, 6자의 틀 안에서 이를 다진다면 미국이 일방적 군사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중국의 입장과 현실을 인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북핵의 차이나 패싱을 우리가 조장할 필요도 없고 중국의 역할을 폄하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기적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살려 북핵 폐기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국들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사드 보복이 서운해도 중국과의 소통과 협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그게 한국과 중국의 차이라고 언행으로 보여야 한다. 잘만하면 이번 북핵 대화 국면이 한국 외교의 선진화를 위한 고비, 혹은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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