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4년 첫 제정,82년 전면 개정..연임금지조항 36년만에 역사속으로

중앙일보 2018.03.11 17:43
지금의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부터 54년까지의 5년 동안은 중국에 헌법이 없었다. 대신 중국 공산당과 ‘민주정파’라 불리는 나머지 정치세력의 협의체인 정치협상회의가 신(新)중국의 틀을 논의하며 마련한 ‘공동강령’이 임시 헌법의 역할을 했다.  
 

중국 헌법 소사

본격적인 헌법이 제정된 건 1954년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창설되고 국가주석 직책이 신설된 것과 함께 정무원을 국무원으로 개편하는 등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국가 골격이 이 때 완성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그 해 1월 저장성 항저우(杭州)에 내려가 한달 이상 머물면서 초안을 완성했다. 당시 전국에서 52만여 건의 수정 의견이 모였다는 기록을 보면 첫 헌법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준다. 헌법 공포 직후 건국기념일 행사에선 군중들이 대형 헌법모형을 들고 천안문 광장 앞 대로를 행진했다. 
중국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1954년 건국기념일 행사에서 군중들이 대형 헌법모형을 앞세우고 천안문 광장 앞 대로를 행진했다. [중국 외문출판사]

중국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1954년 건국기념일 행사에서 군중들이 대형 헌법모형을 앞세우고 천안문 광장 앞 대로를 행진했다. [중국 외문출판사]

 
현행 헌법의 골격은 1982년 헌법이다. 이는 마오 사망후 집권해 개혁개방을 새로운 국가노선으로 채택한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가 만든 헌법을 전면 개정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10년을 ‘동란(動亂)’이자 '역사적 과오'로 규정한 덩이 마오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전문에는 ‘앞으로 국가의 근본임무는 힘을 모아 사회주의 근대화를 진행하는 것’이란 표현을 둬 실용주의적 경제건설을 강조했고, 기존 헌법의 계속혁명론과 문혁 예찬 표현은 모두 삭제했다. 이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3개 대표론을 전문에 추가하고 '국가가 공민의 합법적 재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사유재산 개념을 도입한 2004년 개정까지 포함해 네 차례에 걸쳐 부분 수정됐다.  

 
국가주석직을 부활시키면서 3연임 제한 조항을 명시한 것도 82년 헌법에서다. 사실상 종신집권을 했던 마오쩌둥 시대의 권력집중과 개인숭배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조항은 집권 2기에 접어든 시진핑 주석에 의해 36년만에 삭제됐다. 외부 세계에서 이번 헌법 개정을 시대역행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