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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짜 직업은 '매사냥꾼'…청도군청 7급 공무원 이기복씨

중앙일보 2018.03.11 14:00
30년 이상 매사냥 전통 잇고 있는 이기복씨 
매를 들고 있는 이기복 응사. 청도=김정석기자

매를 들고 있는 이기복 응사. 청도=김정석기자

 
"우와~!"
 
퍼덕이는 꿩 한 마리를 발견한 매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쳐 목표물을 낚아채는 순간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매꾼의 팔목 위에 앉아 한가로이 주변을 살피던 매가 돌연 꿩의 목숨을 끊어놓은 데 걸린 시간은 10초가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 10일 경북 청도군 이서면 청도박물관에서 열린 '매사냥 시연회' 자리에서 펼쳐진 장면이다.
 
정신없이 사냥한 꿩의 깃털을 뽑아대던 매는 누군가의 명령에 금세 순한 모습을 되찾고 매꾼의 팔목 위로 다시 올라탔다. 팔목에 매를 올리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주인공은 바로 이기복(54)씨. 30년 이상 매를 부렸다는 이씨는 자신을 '응사(鷹師)'라고 소개했다. '응사'는 사냥에 쓰는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을 뜻한다.
10일 경북 청도군 이서면 청도박물관에서 열린 매사냥 시연회에서 이기복 응사가 매 사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청도군]

10일 경북 청도군 이서면 청도박물관에서 열린 매사냥 시연회에서 이기복 응사가 매 사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청도군]

 
도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맹금을 오랜 세월 다룬 이씨는 청도에선 유명인사다. 그가 국내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매꾼이어서다. 청도군청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인 이씨는 중학생 시절 매를 기르던 이웃집 아저씨를 보고 매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20대 후반엔 전북 진안에서 활동하던 매사냥 무형문화재 전영태씨(2006년 작고)와 응사 박정오씨를 찾아가 매사냥을 제대로 전수받았다.
 
이씨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매는 '소유물'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점이었다. "매를 조련시키는 일을 '매를 푼다'고 합니다. 마음을 닫고 있던 매가 응사와 교감하는 순간 곤두세운 털을 푼다고 해서 그런 말이 붙었죠. 매가 '저 사람은 내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을 주는 동반자'란 생각을 해야 비로소 매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매사냥 시연회에서 한 응사가 선보인 매. 꼬리에 방울과 하얀 고니 깃을 달고 이름을 적어 둔 '시치미'가 달려 있다. 청도=김정석기자

지난 10일 매사냥 시연회에서 한 응사가 선보인 매. 꼬리에 방울과 하얀 고니 깃을 달고 이름을 적어 둔 '시치미'가 달려 있다. 청도=김정석기자

 
야생의 매를 잡는 일도 '매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응사와 매가 인연이 닿는 일이어서다. 매가 날아드는 숲에 낚시줄로 만든 그물을 거미줄처럼 쳐놓고 그물 앞에 살아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묶어둔다. 이씨는 "매일 아침 7시에 그물을 쳐놓고 오후 6시까지 기다린다. 비둘기가 아무리 퍼덕여도 의심이 많은 매는 쉽사리 비둘기를 덮치지 않는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며칠 허탕을 치다 응사가 포기할 쯤 비로소 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나 어렵게 받은 매를 이씨는 봄이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고대로부터 이어지던 전통 방식이다. 그는 "가을에 매 한 마리를 받아 푼(조련한) 뒤 겨울 한철 꿩 사냥을 하고 봄에 자연에 되돌려 보낸다"며 "매를 돌려보내는 것이 아깝지만 매도 야생에 적응하는 것이 빨라지고 매 사냥꾼도 실력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매를 들고 있는 이기복 응사. 청도=김정석기자

매를 들고 있는 이기복 응사. 청도=김정석기자

 
이씨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등록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현행법상 천연기념물인 매를 잡아 사육하는 것은 불법이다. 무형문화재로 등록되면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육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무형문화재인 박정오 응사의 도움으로 매를 부리고 있다.
 
실제 한국의 매사냥 전통은 명맥이 끊어질 위기다. 현재 매 사냥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2명을 비롯해 응사 10여 명이 남아 있다. 매사냥 전통을 후손에 전수할 만한 실력을 갖춘 응사는 5명 정도다. 2010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매사냥을 지정할 때 한국도 관련국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전무하다. 매사냥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없다.
이기복 응사가 10일 매사냥 시연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매를 선보이고 있다. 청도=김정석기자

이기복 응사가 10일 매사냥 시연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매를 선보이고 있다. 청도=김정석기자

 
국내 전통 매사냥은 고조선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번성했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사라졌다. 청도에선 1970∼80년대까지 겨울철에 매를 사냥했다.
 
이씨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직접 매를 키울 수 있게 되면 청도에 최초의 매사냥 학교를 만들 생각"이라며 "제 인생을 매 사냥 전통을 잇는 일에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청도=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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