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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르포] 열화상 카메라가 ‘공회전 배기가스’를 촬영한다

중앙일보 2018.03.11 13:26
 
서울시, 올해부터 열화상 카메라로 공회전 단속 
 
“쉿, 들린다.”
 
지난 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후문 앞 도로. 세 명의 남성은 정차된 자동차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엔진이 켜진 승용차 한 대의 뒤편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무리 중 한 명이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장비를 꺼내 승용차 배기구 쪽을 동영상 촬영했다. 
 
그러자 회색의 승용차는 화면 속에서 붉은색으로 나타났다. 배기구에서 배기가스가 나와 온도가 올라가서다. 반면 차가운 아스팔트는 파란색으로 표시됐다. 장비에 부착된 열화상 카메라가 온도를 감지한 것이다.  
 
화면에 표시된 촬영 시간이 6분을 넘어서자 이 남성은 장비를 껐다. “이제 갑시다.” 비장한 표정으로 승용차 주인에게 다가간 이들은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다. 이들은 특수 장비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배기가스’를 잡아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공회전 차량 단속에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 장비를 이용한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는 올해부터 공회전 차량 단속에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 장비를 이용한다. 김상선 기자

 
“잠깐 켜놨다” 운전자 발뺌에 증거 내밀자….       
 
“6분 14초간 중점 공회전 제한 장소에서 공회전했습니다. 면허증을 제시해주세요.” 이해관(59) 서울시 기후대기과 주무관이 운전자에게 적발 사실을 알렸다. 이날 오전의 기온은 영상 5도. 기온이 5도 이상에서 25도 미만일 경우 2분만 공회전해도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다. 게다가 관광지‧주차장과 같은 ‘중점 공회전 제한 장소’ 2772곳에선 1차 경고 없이 바로 적발할 수 있다.  
 
운전자는 “시동을 켜둔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이 주무관이 “이 장비에 시간까지 기록된 증거가 있다”며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자 
운전자는 한 발 물러섰다.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하던 운전자는 결국 단속 15분 만에 면허증을 내놓고, 확인서에 서명했다. “15일 후에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됩니다.”(이 주무관)   
 
초시계 측정 땐 위반 운전자에 멱살 잡히기도 
 
서울시는 올해부터 처음으로 ‘특수 장비’를 이용해 공회전을 단속한다. 이 특수 장비의 본체는 ‘스마트폰’이다. 열을 감지하는 온도센서와 열화상 카메라를 스마트폰에 부착했다. 한 대에 약 500만원씩 들여 6대를 개발했다.   

 
서울시가 특수 장비까지 동원한 데는 공회전 단속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공회전을 잡는 건 ‘초시계’였다. 배기가스 배출 시간을 초시계로 재서 단속하다 보니 운전자와 시비가 자주 생겼다. 운전자가 “증거 있느냐”고 따지거나 “시간 측정이 정확하다고 어떻게 믿느냐”고 의심하면 단속반도 할 말이 없었다.  

 
공회전 단속반의 서민성(24) 사회공무요원은 “운전자로부터 욕설을 숱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7년째 공회전을 단속하는 이 주무관은 “자식뻘 나이의 운전자에게 멱살도 여러 번 잡혔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끝까지 면허증 제시를 거부하면서 경찰이 출동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공회전을 적발해 경고한 건수는 5900여 건에 달했지만,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는 348건에 불과했다.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후문 앞 도로에서 공회전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 장비(오른쪽)를 이용해 적발했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후문 앞 도로에서 공회전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 장비(오른쪽)를 이용해 적발했다. 김상선 기자



10m 떨어진 자동차 배기구의 열도 포착 
 
공회전은 도심 공해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최균범(57) 서울시 기후대기과 사무관은 “공회전은 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포함된 배기가스를 배출한다”고 말했다. 승용차가 하루 10분 공회전 할 경우 약 1.6㎞를 주행할 수 있는 연료가 낭비된다. 하지만 이제 특수 장비로 공회전 단속은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날 오후 단속반은 중구의 한 호텔 앞에서 4분간 공회전한 관광버스 한 대도 적발했다. 이 주무관은 “이 장비는 자동차가 10m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배기구의 열을 감지한다”면서 “이제 당당하게 단속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앞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공회전 관광버스를 촬영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서울시 공회전 단속반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앞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공회전 관광버스를 촬영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공회전과 미세먼지 인과관계 규명도 중요” 
  
하지만 여전히 공회전 단속에는 어려움과 논란은 남아있다. 이날 오후 단속 완장을 찬 이 주무관이 경복궁 실외 주차장에 나타나자 관광버스들은 일제히 시동을 껐다. 버스 운전사들의 하소연도 만만치 않다. 관광버스 기사 이모(70)씨는 “시동이 안 걸려 있으면 관광객들이 ‘차 안이 밖보다 더 춥다’고 야단이다”고 말했다. 
 
김기현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단속이 시민들의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공회전이 미세먼지를 얼마나 유발하는지 등에 관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해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가 심한 3월 한 달 동안 6개반(총 18명)을 투입해 공회전 차량을 집중 단속한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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