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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에 열광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2018.03.11 02:30 574호 29면 지면보기
최근 서울 연희동에 새로 생긴 수제 맥줏집에 갔다가, 입구에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운터, 화장실 문, 바 등 내부의 주요 시설을 자개장을 활용해 만들어서다. 재가공된 자개장들은 조명을 받아 유독 반짝였다.
 

인기 끄는 레트로

압축성장 시대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온 자개장은 한 때 ‘부의 상징’에서 붙박이장 아파트 시대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그런데 술집, 밥집, 찻집 심지어 호텔 등 새로 생기는 공간마다 ‘핫한 아이템’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색적인 인테리어 덕인지, 찻집이었을 때 한산했던 공간은 이제 청년들로 빼곡했다. 어린 시절 안방의 터줏대감이었던 자개 화장대와 자개장, 자개농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책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의 한 구절도 함께. “유럽 같은 데를 보세요. ‘올해는 이 상품, 내년에는 저 제품’ 같은 얘기를 안 하고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가게가 많아요. (중략) 브랜드고 뭐고 상관없이 오래된 물건의 소박함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 우리 마음은 황폐해지지 않아요.” 교토의 어느 거리에서 앤티크 물품을 파는 찻집 주인장의 말이었다.
 
겨울 휴가차 전북 순창의 ‘금산여관’에 갔을 때, 추억과 경험을 아우르는 레트로의 힘을 제대로 목격했다. 순창 버스터미널 앞 시골 골목길 끄트머리에 있는 여관은 80년 가까이 묵은 한옥이다. 실제 여관으로 쓰던 ‘ㅁ’자 한옥인데, 그 쓸모를 다해 12년이나 방치된 폐가를 홍성순(52)씨가 최대한 옛날 모습으로 복원해 문을 열었다.
 
눈이 펑펑 나리는 겨울날, 이 오래된 한옥에는 찬 바람이 그대로 꽂혔다. 자글자글 끓는 방바닥에 달라붙어 잠을 청한 다음날, 공용 부엌에서 마음에 봄을 맞았다. 주인장은 객이 차 시간에 늦어 빈 속으로 나갈까봐 “어째쓰까나”를 연방 외치며 커피를 내리고, 계란프라이와 사과로 아침상을 차렸다. 등교 시간에 늦은 아이 챙기는 엄마 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허겁지겁 먹고 있는 객을 보며 그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일전에 결혼하고 17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버스표를 끊고 온 여자분이 있었어. 여기 와서 속 이야기하며 얼마나 펑펑 울던지. 밤새 만리장성을 쌓고 가부렀어. 여기는 손 안 댄 듯이 고치느라 돈 더 들었어. 질 낮은 새것으로 덧대고 싶지 않아서. 문 틈 사이로 바람 숭숭 들어오는데 냅뒀어. 욕먹을 각오하고 시작한 거지. 그래도 몸에 좋게, 잘 잘 수 있게, 여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노력하고 있는데, 예쁘게 잘해놓은 게스트하우스가 워낙 많아지니까, 가성비 면에서 비교가 되지. 그래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 사이 옆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부산에서 홀로 온 20대 아가씨가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금산 여관의 110호실은 놀러 왔다 눌러앉은 청년의 ‘방랑싸롱’으로 개조돼 운영되고 있다.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금산여관에 꽂힌 청년 20여 명이 아예 순창에 귀촌하기도 했단다. 오래돼서 쓸모없다고 사망 선고를 받은 금산여관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새 집 대신 옛 집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빨리 변하는 것은 흔하고, 오래된 것은 귀한 시대가 됐다. 옛 것이 오히려 새롭기까지 하다. 새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루저’가 될 필요도 없다. 옛 것은 계속 그 자리에 있어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게 레트로(복고)의 힘이다.  
 
 
글ㆍ사진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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