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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대취타’처럼 가보지 않은 길 갑니다

중앙선데이 2018.03.11 02:30 574호 20면 지면보기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용진·송설·조승열·박혜지·이재화. [사진 국립극장]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용진·송설·조승열·박혜지·이재화. [사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이 또한번 도전에 나선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유명 안무가나 타 장르 예술가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무용의 틀을 깨는 무대를 선보여 왔다면, 이번엔 내부에서 안무가를 육성해 신작 개발에 나서는 ‘넥스트 스텝’이다.
 

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 주역 이재화·박혜지·조용진·송설·조승열

과거에도 ‘엔톡초이스’ ‘국립무용단 컬렉션’ 등 안무 프로젝트가 있긴 했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공정한 심사로 단원에게 안무 기회를 주고, 안무가 변신에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교육과 외부 자문에 관객 참여단까지, 과정 자체를 시스템화했다. 지난해 하반기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한 정소연·김병조·이재화가 준비한 개성 뚜렷한 무대가 15일부터 3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다. 세 팀 중 전통 농악 장단을 무용으로 재해석한 이재화(31)의 ‘가무악칠채’ 연습실을 찾았다.  

박혜지 [사진 국립극장]

박혜지 [사진 국립극장]

 
연습실엔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의 스타가 다 있었다. 개막식의 씬스틸러 인면조와 함께 등장한 ‘웅녀’ 박혜지와 폐막식에서 판소리로 흥을 돋웠던 국립창극단의 김준수다. 박혜지는 ‘가무악 칠채’의 홍일점으로 섭외됐고, 24일 완창판소리 공연을 앞두고 있는 김준수는 무용에 대한 욕심에 기꺼이 소리로 동참한다고 했다. 국립무용단의 간판인 송설·조용진과 신예 조승열까지, 이 ‘무용 어벤저스’를 이끄는 ‘상쇠’가 이재화다.
 
타악 중심의 리듬에 맞춰 전통의 선을 살리면서도 강렬하고 절제된 안무가 퍽 세련돼 보이지만, 작품의 토대는 농악이다. 사물놀이에서나 쓰는 ‘칠채 장단’을 춤·음악·판소리로 변주했는데, 무용 음악으론 낯선데다 3분박과 2분박이 섞인 불규칙한 리듬이라 베테랑 무용수들도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도 가다가 길을 잃어요. 그럴 땐 혜지만 봅니다. 눈동자가 많이 안 돌아가는 사람이 맞는 거니까요.(웃음)”(송설) “저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장단이 익숙하지 않아서 칠판에 적어놓고 입으로 소리내면서 외워야 했죠.”(박혜지) “이제야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아요. 아직도 중간에 놓칠 때가 있죠. 관객이 어떤 것을 가져갈지 궁금한 부분이 큰 작품이에요.”(조승열)
 
시작은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협업한 ‘시간의 나이’였다. 프랑스 투어 때 객석반응이 “한국보다 두 배 정도 좋았다”는 것이다. “매번 반응이 너무 좋아 대체 이유가 뭘까 싶었어요. 몽탈보도 댄서가 악기 매고 구음도 하는 걸 신기해했거든요. 우리한텐 자연스러운데 그들은 처음 보는 게 ‘가무악일체’였던 거죠.”(이재화)
 
‘가무악일체’를 테마 삼았지만 한 사람이 가무악을 다 하는 무대는 아니다. 음악·무용·소리 전문가가 모여 ‘칠채’라는 소재를 변형하고 실험하는 컨셉트다. 그런데 판소리에도 낯선 장단이다. 연습에 함께 한 김준수도 “규칙적이지 못한 장단 위에 소리 얹는 게 너무 어렵다. 최대한 이질감 들지 않게끔 이리저리 시도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낯선 장단을 쓰나요.
재화: 제가 무용보다 사물놀이를 먼저 하면서 배운 장단인데요, 칠채를 치면 에너지가 좋았어요. 속도가 빨라지고 보는 사람도 강렬한 인상을 받죠. 무용에서 쓰는 엇모리장단이 칠채와 비슷한데, 무용은 왜 칠채를 안 쓸까 싶었어요. 그래서 골랐는데 쉽진 않네요. 일정한 박이 아니라 카운트를 세니 재미가 없어지고, 음악을 타고 가자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설: 선배들이 안 쓴 것을 우리가 써본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서태지가 대취타를 사용했듯이, 이 장르에서 안 해본 걸 해보는 거니까요. 칠채를 현대화시키다보니 한국 장단이 헤비메탈까지 가는데, 한국무용 분위기도 많이 변했잖아요. 기존 농악의 표현법은 가지고 오되 지금에 맞는 게 뭔지 고민하며 젊은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에요. 
 
장단 자체가 소재인 만큼 무대는 오선지가 된다. 무대 위에 그려진 오선지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무용수 몸에 맞춰지며 템포를 반영하다 마지막에 사물놀이 절정의 순간처럼 빨라지며 하나의 선으로 모일 때 칠채의 진수를 느끼는 구조다. “칠채의 변형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죠. 입에서 나오는 칠채부터 시작해 박수를 친다거나, 칠채가 진화되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걸 몸으로 반응하면 춤이 되거든요. 준수가 주체가 됐다가 재화가 주체가 됐다가 하는 가무악의 어울림이 관전 포인트가 될 거에요.”(조용진)  
 
재화씨는 세 안무가 중 유일하게 무대에 서는데.
재화: 저만 구경하면 형들이 가만 안 둘 것 같아서요.(웃음) 무용수들이 다섯개 음표라 생각해요. 설이형이 강하고 초월적인 음표라면 용진형은 부드러운 음표죠. 혜지는 빨간색으로 체크해논 음표고 승열은 역동적인 음표, 저는 잘라놓은 듯 빠른 음표랄까요. 똑같이 움직여도 다 다른 음표로 보일거에요.

설: 농악은 상쇠가 끌고 다니잖아요. 재화는 현대판 상쇠죠. 재화가 칠채 장단을 만들며 시작해 우리가 농악 이미지를 넣어가요. 누구는 장구, 누구는 소고, 누구는 북일 수 있는데, 칠채로 풀어내는 리듬놀이에 한국적 이미지를 사이사이 배치하는 거죠. 한량무라면 갓 쓰고 부채 휘두르는 대신 클럽에서 칠채비트를 타며 노는 식인데, 젊은 감각으로 재미있게 형상화하려 고심하고 있어요.  
 
스타보다 시스템에 포커싱
송설 [사진 국립극장]

송설 [사진 국립극장]

이재화 [사진 국립극장]

이재화 [사진 국립극장]

어려운 도전을 받쳐주는 건 남다른 팀웍이다. 안무 데뷔작이기에 절친들만 캐스팅했지만, 서로 잘 알기에 더 많은 준비기간이 필요했다고. “다른 팀은 연습을 많이 하고 런도 돌았겠지만 우린 얘기를 더 많이 했어요. 어제 오픈 리허설 때 처음 모든 에너지를 쏟아 합을 맞춰봤는데, 에너지가 소통 되고 공감이 가는 느낌이 좋았어요.”(용진)
 
‘웅녀’ 박혜지를 홍일점으로 캐스팅한 건 의외로 “보이시해서”다. “고등학교 동기거든요. 아름다운 춤도 잘 추지만 어릴 때부터 봐서 보이시한 걸 알고 있죠. ‘회오리’ 때도 짐승같이 했쟎아요. 여자였다가 짐승이었다가…남자들한테 안 밀리는 에너지를 가졌으니 두루두루 써먹을수 있죠.(웃음)”(재화) “화려한 테크닉의 남자춤이지만 잘 변형해서 묻어가고 있어요. 살짝 외롭지만 배우는 게 많죠. 오빠들이 조안무도 해보고 경험이 많으니 아이디어를 잘 내요. 이런 작업 시도하는 재화의 도전도 보기 좋고, 언젠간 나도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또 다른 경험이에요.”(혜지)
조승열 [사진 국립극장]

조승열 [사진 국립극장]

조용진 [사진 국립극장]

조용진 [사진 국립극장]

 
‘넥스트 스탭’은 스타 예술가보다 제작 과정 시스템화에 포커싱된 프로젝트기에 단원 누구나 도전가능하다. 사전 교육을 통해 동기를 유발하고 공정한 오디션으로 선발한다. ‘프로듀스 101’의 국민프로듀서 컨셉트를 벤치마킹해 SNS로 팬들의 자율홍보까지 유도하는 ‘민주적 시스템’이다.
 
2014년 ‘기본 활용법’으로 먼저 안무 데뷔한 조용진은 “이번엔 재화를 도와주려 도전하지 않았다”면서 “이 프로젝트가 발전적으로 진행돼 한국무용 안무자가 많이 배출됐으면 한다”고 했다. “전에는 예술감독님이 발탁했다면 이번엔 심사를 거쳐 선발된 안무자들이죠. 사전교육부터 홍보까지 절차를 밟으며 진행하는게 달라요. 인스타그램 ‘#내가키워줄게’로 대중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도 돋보이죠.”(용진)
 
“과거엔 예술가에 집중했다면 이번은 안무가 육성에 가깝죠. 선정방식이나 교육도 그런 차원인데, 해보니 공부가 많이 됐어요. 수많은 스태프를 만나면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은 안무가가 되는 길이란 것도 알게 됐죠.”(재화)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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