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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MVP 엔 순금 75g ‘황연대 성취상’ 드립니다

중앙선데이 2018.03.11 01:00 574호 25면 지면보기
장애 편견에 30년간 맞선 황연대 여사
8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황연대 여사는 ’다시 한국에서 황연대 성취상 시상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평창=장진영 기자

8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황연대 여사는 ’다시 한국에서 황연대 성취상 시상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평창=장진영 기자

올림픽에는 공식적인 최우수선수(MVP) 상이 없다. 종목별로 MVP를 선정하기도 하고, 미디어에서 뽑기도 하지만 비공식적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축제 패럴림픽에는 MVP에 해당하는 상이 있다. 바로 ‘황연대 성취상’이다. 황연대 성취상은 국적이나 성적에 상관없이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도전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남녀 선수 1명씩을 시상한다.
 

국내 첫 소아마비 장애인 출신 의사
88 서울대회 때 IPC에 200만원 기탁
남녀 1명씩 시상, 장애인 편견 바꿔

없어질 뻔 했다가 공식 행사로 격상
“난 세상 떠나도 상은 남아있었으면”

 ‘황연대 성취상’은 1988 서울 여름패럴림픽 당시 장애인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선 황연대(80) 여사가 자신이 받은 상금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을 맞아 평창을 찾은 황 여사를 8일 만났다. 황 여사는 폐막식에 황연대 성취상 수상자에게 직접 시상할 예정이다.
 
 
아버지 끊임없는 격려 덕에 의대 진학
황 여사는 장애인이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고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됐다. 그가 의사가 된 건 함경도 출신인 부친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통신사에서 일했습니다. 요즘 말로 신세대셨죠. 당시엔 장애가 있는 자식들을 다들 부끄러워 했어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당당히 소개했어요.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죠. 어렸을 때부터 침도 많이 맞고 병원도 많이 가서 ‘네 다리엔 기와집 세 채가 들어갔다’는 농담도 하셨죠. 제가 7남매 중 맏딸이었는데 아버지는 저를 위해 모든 걸 해 주셨습니다.”
 
 광복 전 일본인 교장이 받아주지 않아 소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도 황 여사의 아버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너도 다른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심어 주었다. 황 여사는 아버지의 기대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이화여대 의대로 진학했다. “저는 피도 못 보고, 바늘도 무서워했어요. 의학엔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버틴 건 소아마비가 어떤 병인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완치는 어렵지만 의사로서 다른 소아마비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싶었지요.”
 
 한국 최초의 장애인 의사 황연대는 1965년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원에서 일하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마비 재활병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개척자’이자 ‘투사’로서 삶을 시작했다. 28세 때 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를 만들었고, 37세엔 국내 최초 장애인 이용시설인 정립회관을 개관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삐딱하게 서 있으면 아버지가 ‘똑바로 서야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를 정(正), 설 립(立) 자를 써서 정립회관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장애가 있지만 ‘몸도 마음도 똑바로 세우자’는 뜻이었습니다.”
 
 황 여사는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많은 벽을 넘고, 싸웠다. “장애 학생이 대학 면접에서 떨어지면 학장을 만났어요. 나를 봐라. 나도 이런 몸으로 의사가 됐는데 이 아이가 왜 대학에 갈 수 없느냐고 했죠. 오죽하면 제 별명이 ‘연대장’이었어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과 하도 싸우고 다녀서. 하하.”
 
 한국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달라진 계기는 1988 서울 장애자올림픽(패럴림픽의 당시 명칭)이다. 1988년 1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장애인 등록 제도가 시행되었고 1989년 ‘장애인 복지법’이 전면 개정됐다. ‘장애자’ 용어도 ‘장애인’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달라요. 그래도 그때를 계기로 장애인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남들과 좀 다른 사람’이란 인식이 커졌죠.”
 
 1988 서울 대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IPC가 처음으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한 곳에서 개최한 대회다. 황 여사는 이런 빅 이벤트를 맞아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게 ‘황연대 극복상’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사로부터 받은 ‘오늘의 여성상’ 상금 200만원을 IPC에 기탁한 게 시초였다. “그 전까지 상금을 받으면 항상 쓰지 않고 모아뒀어요. 장애인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마침 한국에서 패럴림픽이 열리게 됐고, 좋은 기회가 생겼죠.”
 
 
18일 폐회식서 27, 28번째 수상자에 시상
서울 패럴림픽 폐막식 때 성적과 이념·종교·인종·국적과 관계없이 장애 극복과 도전 정신을 가장 훌륭하게 실천한 남녀 선수 각 1명에게 ‘황연대 극복상’을 수여했다. 두 번째 시상이었던 1992 바르셀로나 패럴림픽 때는 상이 사라질 뻔도 했다.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 장애인 체육에 종사하지 않은 한국인이 주는 상을 패럴림픽에서 계속해서 줘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권익을 위한 상이라는 의미를 높게 평가받았고, 나중에는 공식 행사로 인정받게 됐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부터는 ‘황연대 성취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황 여사는 “제 개인이 아닌 한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고 회고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금메달은 사실 ‘금’이 아니다. 무게 제한(평창 대회 메달은 586g)은 없지만 순은에 순금 6g 이상을 도금해야 한다는 게 IOC 규정이다. 하지만 황연대 성취상 메달은 순금 75g으로 제작된다. 황 여사의 비서 역할을 하는 아들 정성훈씨는 “기업이나 다른 사람의 후원 없이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메달 제작과 시상 비용을 대려고 어머니가 빚을 낸 적도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황 여사는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고 했다.
 
 황 여사는 건강 문제로 가지 못한 2016 리우 대회를 제외한 모든 대회에 시상자로 나섰다. 18일 오후 8시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폐회식 공식행사에선 27, 28번째 수상자가 탄생한다.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다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시상을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데 나이도 있고, 건강 문제도 있어서 아마 2020 도쿄 대회가 (직접 가는 건)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름이 달라져도 상관없으니 이 상이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이 상을 통해 누구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평창=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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