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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정책 키 청와대가 잡아라

중앙선데이 2018.03.11 01:00 574호 30면 지면보기
Outlook
“Minister for Trade?”

실권 없는 차관급 통상교섭본부
대내외 협상서 조정 역할 떨어져

일사불란한 협상시스템 구축
신속한 의사결정구조 갖춰야

 
 1998년 대외 통상 협상을 전담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장관 산하 조직으로 통상교섭본부가 첫 출발했을 무렵의 일이다. 당시 거대경제권의 한 국가와 추진하던 양국 통상장관 회담이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통상교섭본부장의 영문 직명을 보더니 격이 맞지 않는다며 회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 ‘Minister for~’는 내각 구성원이 아닌 별정직 장관급 인사를 지칭할 때나 쓰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장관끼리의 회담이 되려면 ‘Minister of Trade’란 직명을 쓰는 각료급 실제 ‘장관’, 즉 외통부 장관(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본부는 이후 내내 협상 현장 곳곳에서 ‘자격이 있느냐’는 이런 주장에 시달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활한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외적으로 장관급이다. 하지만 실제론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의 차관급 조직으로 영문 직명은 아직도 ‘Minister for Trade’를 쓴다.
 
 한·미 통상 마찰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 난마같이 얽혀있는 통상 현안을 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책 추진이 요구되고 있다. 한데 통상본부의 위상은 한국 통상 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말로만 장관 명칭을 쓸 뿐 실제 권한이 없다 보니 대외 협상은 물론 국내 정책 조율 등 내부 협상에서조차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관련 법령부터 헙수룩한 게 한둘이 아니다.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규정을 보면 통상본부장은 식약처장·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과 함께 장관급보다 아래 등급으로 구분돼 있다. 차관급인 본부장이 각 부처 장관들을 상대로 정책 협의를 주도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계급과 서열을 중시하는 공무원 사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정부 통상 정책의 최종 결정기구인 대외경제장관회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행 대외경제장관회의 규정(대통령령)에는 회의 구성원에서 통상본부장이 아예 빠져있다. 정부조직 개편 이후 1년이 다 돼가는데도 관련 규정을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의 참석자 3분의 2 이상 의결로 주요 통상 정책을 결정하는데 정작 주무 부처인 통상본부장은 참석권도, 의결권도 없는 상황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부처 간 정책을 교통 정리해줄 내부 시스템은 요원한 실정이다. 경제 부처 수장인 경제부총리의 역할부터 실종된 지 오래다. 지난 5일 김동연 부총리 주재로 부랴부랴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렸지만 “미국 정부에 우리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라”라는 맥 빠진 지시만 내렸다.
 
 청와대 경제 라인에 별다른 통상 전문가가 없는 것도 문제다. 한·미 FTA 개정 협상 최대 쟁점인 자동차 규제 완화와 의약품 가격제도 개선 문제가 건설교통부와 보건복지부의 완강한 입장에 막혔는데도 누구 하나 총대를 메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청와대에 쏠릴 정치적 부담만 걱정한다.
 
 민간 통상 전문가를 영입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 역시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올 초 실시된 주미대사관 경제공사 공개모집에서 통상법 전공의 민간 전문가가 만장일치로 1순위로 꼽혀 청와대로 올라갔다. 그런데도 관료 출신을 미는 관련 부처의 압력에 밀려 아직까지 적임자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정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 지휘탑마저 실종되다 보니 이제 한국의 통상외교는 전략·체계·전문가가 없는 ‘3무’의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산적한 통상 협상을 순전히 특정인의 원톱 ‘개인기’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미 무역대표부(USTR)를 보면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각종 통상 현안의 조정은 각 부처 국장급이 참여하는 무역정책실무협의회(TPSC)-차관보급의 무역정책검토회의(TPRG)-대통령 주재 국가경제위원회(NEC)등 씨줄·날줄처럼 엮인 단계적인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활하게 이뤄진다.
 
 조직 체계도 행정부처 직제와 달리 대통령 직속의 대표-부대표-대표보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 모두에 ‘협상 대사’의 지위를 부여해 직급을 둘러싼 문제가 없다. 이러한 업무 효율성으로 중국은 이미 이를 본뜬 장관급 조직인 ‘국제무역담판대표(CITR)’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도 통상 대응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한국형 무역대표부(KTR)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조직을 어디에 두느냐가 아니다. 정책 조정 권한을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는 대내 협상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통상 협상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신속한 내부 의사결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부처·업계 간의 협의 결과만 기다리기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먼저 나서야 하는 이유다. 협상 조직 역시 정책 실행의 행정형이 아닌 협상 전문가들이 일사분란하게 모인 실무형으로 재편돼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청와대가 통상 정책의 키를 잡고 총체적 통상 전략을 세우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위기에 빠진 통상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홍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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