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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장소 외 금언

중앙선데이 2018.03.11 01:00 574호 31면 지면보기
성석제소설
소설가 제이는 3년 전 국제문학 세미나에 한국 작가의 일원으로 참가해 교류를 주제로 한 분과의 발제를 맡았다. 같은 분과에 의외의 인물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철학자인 이아무 교수였다. 그동안 제이는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든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제이가 속해 있는 분과가 ‘교류’를 주제로 하는 만큼 문학의 국제적 교류는 물론이고 평소에는 서로 만나기 힘든 분야·사람끼리의 교류도 의미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해박한 지식으로 이름 난 이 교수
세미나 자리서 꼭 쥔 손 바닥엔
쓸데 없는 말 막는 아내의 경고가 …

 
 두 사람의 실제적인 만남은 세미나가 시작된 첫날 행사가 열리는 호텔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대략 열 명쯤이 앉을 수 있는 원탁에 나란히 앉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이가 자신을 소개하기도 전에 이 교수는 제이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고는 악수를 청했다. 식사가 날라져 오는 중에 이 교수는 제이에게 고개를 기울이고는 “선생님 작품을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제이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삼십 대에 막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에나 한두 번 들었던, 창작자에게는 최고의 상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 교수가 작가라면 아무에게나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지, 진심에서 하는 말인지 헛갈렸다.
 
 이 교수는 이따금 TV에 출연해 해박한 지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강연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언론에 기고하는 글도 많아서 자신의 전공인 서양철학 외에도 시사·교양·예술·역사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 걸친 칼럼을 썼는데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그의 글을 제이도 몇 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로서 진지한 문학적 담론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에도 초대받을 만큼 학문적인 권위도 인정받고 있었다.
 
 제이는 대학 시절에 학생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 교수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책의 내용은 분야 간 장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충분히 숙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교수의 앎에 대한 열망, 학문에 대한 열정은 내면이 뜨끈해질 정도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간혹 이 교수처럼 베스트 셀러와 TV 출연, 대중 강연으로 한 시절을 풍미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대기권에 진입한 운석처럼 불타며 생명을 다한 뒤 암흑 속으로 스러져가곤 했다. 그들은 유명해졌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대중에게 잊히곤 했는데 제이는 유명인에서 무명인으로 추락하는 속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이 교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드물게 예외적인 존재로 꾸준히 명성과 위상을 유지하거나 조금씩 높여가고 있었다.
 
 언젠가 제이는 이 교수가 영어로 진행하는 어떤 국제학술회의를 창 너머로 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이 교수였다. 사회자인 그가 별스럽지도 않게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외국인 청중이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고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우연히 그곳에 갔던 제이가 안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 전체를 마음먹은 대로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제이에게는 그 광경이 놀랍다 못해 충격적으로 여겨졌고 이 교수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말발’과 능력, 인기에 위화감마저 느꼈다. 그 뒤로는 그의 책이든 칼럼이든 읽은 적이 없었다.
 
 한국과 외국의 문인·학자들이 각자의 분과에서 두루뭉술한 대로 교류의 장을 형성한 채로 국제문학 세미나의 첫날이 저물었다. 저녁 식사가 호텔의 연회장에서 있을 것이라 해서 대회 참석자와 학계·문화계 인물 등 백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연회장으로 향했다. 우연치 않게 제이는 이 교수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이런 국제적인 문학 행사에 저 같은 문외한을 불러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진행이 되네요. 외부인이 보기에는 참 흥미진진합니다.”
 
 이 교수의 말에 제이는 무난한 대답을 골랐다.
 
 “문학 행사라고 늘 문학 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늘 하던 대로 비슷한 시각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국내외 다른 분야의 권위자들을 여러 분 초청한 게 다양성 측면에서나 전에 없던 신선한 논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참 잘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동석을 하게 되었다. 제이가 대학 시절 읽은 이 교수의 책 이야기를 하자 이 교수는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진 채로 웃음을 터뜨렸고 두 사람은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한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나 친척이라도 되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그런데 제이에게 이 교수가 언제부터인지 왼손을 꼭 쥐고 있는 게 보였다. 식사에 곁들인 와인으로 취기가 약간 오른 제이가 장난스럽게 그 손을 펴보려고 했고 이 교수는 펴지 않고 버텼다. 마침내 제이가 힘으로 이겨서 이 교수의 손바닥이 펴졌다. 거기에는 잘 지워지지 않는 유성 펜글씨로 ‘지정장소 외 금언’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수님, 담배를 피우시나요?”
 
 단정하고 청결한 모습에 향기마저 풍기는 이 교수에게 제이가 물었다.
 
 “아, 이거 제 아내가 써준 겁니다. 저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금연이라는 말을?”
 
 이 교수는 망설이다가 결국 자신에게 향해진 사람들의 시선을 뿌리치지는 못하고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금연할 때의 그 연기 ‘연’이 아니고 말씀 ‘언’ 자입니다. 정해진 장소 외에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나 할까요. 아내는 제가 나이 들면서 고집이 더 세지고 점점 더 말이 많아지는 것이 공연한 화를 불러일으킬까 걱정이랍니다. 어질고 엄한 아내의 충고가 지워지지 않도록 저는 오늘 아침 세수도 오른손으로만 했습니다.”
 
 그제야 제이는 이 교수가 현기증 나게 빨리 변화하는 시속에서 오래도록 스스로의 자리를 지켜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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