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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건 북한 … 트럼프, 핵‘종료’압박하고 당근 늦출 듯

중앙선데이 2018.03.11 00:02 574호 5면 지면보기
5월 북·미 정상 ‘핵 담판’ 잘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북한과 거래가 많이 진행됐고 끝나면 세계를 위한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북한과 거래가 많이 진행됐고 끝나면 세계를 위한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수락은 조건부였다. 대화의 문턱도 아직은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회담 제안을 수락한 뒤에도 백악관은 북한이 약속한 비핵화에 걸맞은 후속 조치를 취해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첫 북·미 정상회담 조건부 수락
“대북제재 트럼프 전략 빛봐”
단계 접근보다 “핵 폐기” 포괄 방안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가능성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미 정상 간의) 회담은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이 그에 걸맞은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조치(concrete and verifiable actions)를 할 때까지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은 북한이 약속에 걸맞은 구체적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까지 회담을 열지 않을 것” “다시 한번 말하지만 (회담을 위한) 시간과 장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의 협상은 매우 좋은 것이다. (회담) 시간과 장소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결이 다르다. 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첫 만남의 장소와 시간 합의에 몇 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과속을 경계했다.
 
 백악관과 국무부의 이런 분위기는 5월로 시한이 정해진 정상회담에 앞서 사전 실무 접촉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급한 건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란 얘기다. 백악관은 이날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이 미국 등 국제사회가 추진해 온 ‘최대의 압박 캠페인(maximum pressure campaign)’이 작동한 결과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성명에서 “미국이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았는데 북한은 대화 테이블로 오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을 고립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과거 3대에 걸친 미 행정부(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1년 이상 진행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북한이 기존 입장을 바꿔 대화의 손을 내민 만큼 북한이 먼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10일 “경제적 압박, 외교적 고립, 군사적 긴장 고조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은 절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바꿔 협상에 나온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며 “그런 만큼 앞으론 북한을 달래기 위한 유화적인 태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협상관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7월 펴낸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이란 책에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협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협상의 기본 전략을 명심하라. 합의가 간절한 쪽이 더 적게 얻기 마련”이라고 적었다. 또 “나라면 사정이 너무 나빠 이란의 지도자들이 협상을 구걸할 수밖에 없도록 제재를 강화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대의 압박을 통해 북한이 과거보다 훨씬 합의에 간절하게 만들거나, 협상을 구걸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미국의 상황 인식이 향후 북·미 간 실무 접촉에도 반영될 것으로 봤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2000년 10월 북·미가 체결한 공동 코뮤니케 합의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일 것이란 분석이다.
 
 첫 북·미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던 2000년 합의에서 양국은 향후 협상의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 ▶상호 적대 관계 포기와 경제 교류·협력 확대 ▶미국의 대북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 등이 그것이다. 이후 정상회담을 한 뒤 이를 토대로 후속 실무 협상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인의 반대로 방북 자체가 무산됐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에 이뤄질 실무 접촉에서 미국은 비핵화의 ‘시작’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종료’하는 수준의 합의안을 북한 측에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동결-신고-검증 및 사찰-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보다는 포괄적 접근을 담은 합의안을 만든 뒤 정상회담에서 이를 최종 승인하고 이후에는 실제 이행을 강요한다는 기세다. 단계별 접근으로 시간을 끈 게 과거의 방식,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폐기를 담은 포괄 방안으로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거라는 얘기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미국의 기대치를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맞춰 줄지가 향후 실무 접촉의 관건”이라며 “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은 작지만 회담에 앞서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은 “정상회담 이전에 최소한 북한이 이미 신고했던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정도는 이뤄져야 한다고 압박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핵·미사일 폐기 대가로 북한에 줄 ‘당근’ 제공 시점도 최대한 늦출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8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에겐 두 개의 옵션이 있다”며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결과 폐기를 대가로 대북제재를 풀고 에너지·경제 지원을 하는 매력적인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북·미 외교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더 큰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 석좌는 “북·미 정상회담이 수십 년 분쟁을 끝낼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전쟁 직전에 내몰릴 수도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은 압박과 억제 능력이 여전히 강할 때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박성훈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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